낙봉서원(洛峰書員)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03 14:32
조회
24715
배향(配享) : 두곡공(杜谷公) 고응척(髙應陟)
제일(祭日) : 음(陰) 3월 中丁(중정)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海平面) 낙성리(洛成里) 서원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
1989년 5월 29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22호로 지정되었다. 1646년(인조 24) 유림의 뜻으로 세웠다. 1787년(정조 11)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어 선현을 배향하고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31년에 지방유림의 발의로 복원된 이래 제향을 지내오다가, 1977년 묘우를 다시 세우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경내에는 사우(祠宇)인 상덕사(尙德祠), 강당인 집의당(集義堂), 동재(東齋)인 거경재(居敬齋), 서재(西齋)인 명성재(明誠齋), 그리고 신문(神門)과 양정문(養正門) 등이 있다.
상덕사에는 김숙자(金叔滋)·김취성(金就成)·박운(朴雲)·김취문(金就文)· 고응척(髙應陟)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집의당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1칸짜리 방이 1개씩 있는데 서원의 여러 행사 장소로 이용된다. 예전에 유생들이 거처하며 학문을 닦던 거경재와 명성재는 지금은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매년 3월 두번째 정일(丁日)에 향사를 지낸다.
▒ 고응척(髙應陟)
1531(중종 26)∼1605(선조 38). 조선 중기의 학자 시인. 자는 숙명(叔明), 호는 두곡(杜谷)·취병(翠屛). 몽담(夢聃)의 아들이다.
김범(金範)의 문인으로 1549년(명종 4)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고향에서 학문연구에 전심하여 《대학》《주자혹문 朱子或問》 등을 읽고 깨달은 바가 많았다. 둘째형이 당나라 한유(韓愈)의 문장을 읽기를 권하였으나, 성현의 글이 있는데 하필이면 한유의 문장을 배울 것이냐고 거절하였다. 여러 해 동안 《대학》을 탐독하였는데 심지어 식사까지 거르며 학문에 열중하여 마을사람들이 미친 사람처럼 여겼다.
156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함흥교수로 부임하였다가, 1563년 사직한 뒤 시골에 묻혀 도학을 연마하였다.
또한, 《대학》의 여러 편을 시조로 읊어 교훈시를 만들고, 사상을 시 부 가(歌) 곡(曲)으로 체계화하였다.
1595년 풍기군수에 이어 회덕현감(懷德縣監)과 사성 등을 역임하고 다시 낙향하였다.
1605년 경주부윤에 부임하였으나, 곧 사직하였다.
1702년(숙종 28)선산의 낙봉서원(洛峯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두곡집》《대학개정장 大學改正章》이 있으며, 시조작품에는 〈도부 道賦〉〈탄시 嘆詩〉〈차기음 差#기56吟〉〈두곡우음 杜谷偶吟〉〈유감 有感〉〈임인제야시 壬寅除夜詩〉 등이 있다.
▒상세설명
*배향(配享) : 공로(功勞)가 있는 신하(臣下)의 위패(位牌)를 종묘(宗廟)에 모심. 학덕(學德)이 있는 사람의 위패(位牌)를 문묘(文廟)나 사당(祠堂), 서원(書院) 등(等)에 모심
*中丁(중정) : 음력(陰曆) 중순(中旬)에 드는 정일(丁日) 연제(練祭)나 담제(禫祭) 등(等)의 제사(祭祀)는 대개 이 날을 가리어 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