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정번호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7호
지 정 일 시 : 1971년 8월 26일
소 재 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1693번지
성산읍 온평리 도로변에서 북서쪽으로 800m정도 올라가면 혼인지를 알리는 푯말이 보인다.
삼성혈에서 나온 삼신인이 수렵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동쪽나라에서 온 삼공주와 합동혼례를 올렸다는 조그마한 연못. 얕고 작기만한 연못에 불과하지만 삼신인이 이곳에서 혼례를 올림으로써 비로소 제주민이 늘어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 연못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삼성신화에 등장하는 3신인(神人)과 3공주(公主)가 혼인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연못 남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된 현무암 비(碑)가 세워져 있다.
아득한 옛날 모흥(毛興)이라는 곳에서 고을나(髙乙那)·양을나(梁乙那)·부을나(夫乙那)라는 3신인(神人)이 솟아 나왔다. 이들은 수렵과 어로를 하며 생활 하였다. 하루는 이들이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동쪽 바다 위에서 오색찬란한 나무상자가 떠내려와 해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였다.
3신인이 내려가서 목함을 열어 보았더니. 그 안에는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玉函)이 있고 관대(冠帶)를 하고 자의(紫衣)를 입은 사자(使者)가 있었다. 사자가 나와 옥함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15∼16세 가량의 3공주와 우마(牛馬) 및 오곡(五穀)의 종자가 있었다.
사자가 3신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요. 우리 임금께서 이 세 분 공주를 두셨는데, 혼기가 차도록 배필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소. 그러던 중 서해 높은 산에 3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다는 걸 아시고, 신(臣)에게 명하여 3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3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3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이들을 맞아 이 연못에서 혼례를 올리고, 그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다. 이로부터 제주특별자치도에 농경과 목축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혼인지 바로 옆에는 삼신인이 혼례를 올린 후 신방을 차렸던 조그만 굴이 있는데 그 굴이 세갈래로 되어 있어 순전히 전설인 것만은 아닌듯 한 기분이 든다.
이곳은 삼성혈과 함께 제주도 시조의 자취를 더듬어보기 좋은 곳으로 여름과 함께 피어나는 붉은 연꽃은 노을처럼 곱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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