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은 섬 - 우도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16-11-26 09:17
조회
4642
위치 : E:120°57′ N:33°30′ 면적 : 6.012 Km2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도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헌종 9년(1843)경부터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도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채취 하기위해,그리고 숙종 23년(1679) 이후 목장이 설치되면서 부터는 국마를 관리,사육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순조23년(1823)부터 제주 백성들이 계속하여 우도의 개간을 조정에 요청하게 되었고 헌종8년에는 이를 승인 받게 된다.그러나 사람들이 우도에 들어가 땅을 개간하기 시작 한 것은 그간 우도에서 방목하던 마필을 다른 목장으로 반출한 이후인 헌종9년 봄 부터다.
우도주민의 대부분은 우도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본토박이들이다. 과거 우도의 주민들은 우도 내의 같은 마을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의 대부분은 우도 내에 외가,처가,친정,친가를 두고 있다.
이와 같은 지역적 연고관계로 우도 주민들의 대부분은 앞으로도 우도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길 원한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기 때문에 ...." "나와 내 가족이 태어나서 자라 온 곳이기 때문에..." 라고 하는 혈연적,지역적 연고 의식이 강하다.
우도 주민의 성씨는 김해김씨, 제주고씨,제주양씨,파평윤씨, 곡부공씨,진주 강씨,진주정씨등이 대성씨를 이루고 있는데 이중 단위 마을에서 영향력 있는 성씨는 조일리에서 김해김씨와 제주고씨 오봉리에서 제주고씨로 집성촌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뚜렷한 혈연중심의 사회구조를 나타내고 있지는 않는다.
섬의 남동쪽 끝의 쇠머리오름(132m)에는 우도등대가 있다. 남쪽 해안과 북동쪽 탁진포를 제외한 모든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한라산의 기생 화산인 쇠머리 오름이 있을뿐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대지이며 넓고 비옥한 평지가 펼쳐진다.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보리,마늘 등이 생산된다. 부근 해역에서는 고등어,갈치,전복 등이 잡힙니다. 소,돼지 등의 사육도 활발하며 해녀들의 축산지로도 유명하다.
1702년 국영목장인 우도에 감목을 파견한 후 몇가구가 이주하였고 1844년 김석린 진사 일행이 입도하여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섬의 형국이 누운 소와 같은 모양이라 우도라고 불리다가 1900년 당시 오유학 선생이 연평이라고개칭한 이후 1986년 4월 1일 면으로의 승격에 따라 우도면이라 명칭되었다.
설화로는 무고상 손영감, 인골분 이야기, 조돌패기가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잠수 노젓는 소리, 잠수소리, 해녀가 등의 민요가 전해오고 있다. 민간신앙으로는 포제와 당제, 영등제 등을 지금도 지내고 있다.
산호모래(서빈백사)등 우도 8경을 관광자원으로 꼽을 수 있다. 일제시대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은 해녀어업조합을 거쳐 판매하게 되는데 수수료의 50%이상을 조합과 야합한 상인들의 착취에 격분해 1932년 1월 12일 수백명의 해녀들이 우도 구좌읍 세화리에 모여 항일 봉기를 단행하였다.
1932년 해녀항쟁은 전국에서도 유례 없는 대대적인 여성집단의 항일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5년 12월 9일 동천진동 포구에 해녀상과 해녀가를 세긴 해녀노래비가 건립되었다.
볼거리 : 검멀래해수욕장과 경안 동굴 ,산호초 백사장 산호사 해수욕장 ,일출이 아름다운 수동해수욕장
- 자료출처 : 한국도서백서(발행 : 내무부 / 연구 및 편집책임 : 신순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