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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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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홍진(髙弘進) 조선중기 문신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0:38
조회
67
조선 중기 제주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퇴이(退而). 일명 고봉래(髙逢萊)라고 한다. 제주시 이호동 가물개마을에서 고정순(髙定舜)의 3남으로 태어났다.

1618년(광해군 10)에 폐모론을 반대하여 제주에 귀양 온 간옹(艮翁)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명도암(明道菴) 김진용(金晋鎔)과 같이 글을 배웠으며, 효종 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진(李元鎭)의 소개로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1664년(현종 5) 제주별견시재어사 윤심(尹深)이 내도하여 시취할 때에 65세의 나이로 응시, 제주 유생 문영후·문징후 형제와 함께 문과에 급제하고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게 되었다.

1666년 식년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배수(拜受)하고 귀향하였다. 제주목사 이원진이 『탐라지(耽羅志)』를 편찬할 때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년에는 제주시 이호동 가물개마을에 살면서 훈학을 하였는데, 흔히 ‘가물개 고선생’이라고 불렸다.

제주에 유배된 이익(李翊, 1629~1690)에게서 정주학(程朱學)을 익혔으며, 사학과 지리학에도 통달했다. 특히 풍수지리에 뛰어났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