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몽설(髙夢說) 조선중기 무신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0:38
조회
429
자는 필경(弼卿). 선무공신 고응연(髙應淵)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호조참의 고경후(髙景厚)이다. 형제는 고상설(髙相說)이 있다.
고몽설(髙夢說)은 나면서부터 도(道)를 알았고, 지략이 있었으며, 배우지 않고도 능히 천문에 통하고 팔진도(八陣圖)까지 통하였다. 1671년(현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에 이르렀고, 선전관(宣傳官)으로 재임하며 북벌(北伐)에 대한 소장을 누차에 걸쳐 올렸다. 당시 조정 대신들은 고몽설의 소장에 관해 논의하였으나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은 고몽설의 의기를 장하게 여겼으나 그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무관이 되어 북적(北狄)을 소탕하고자 했던 고몽설은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한탄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문행(文行)이 있었다.
고몽설(髙夢說)은 나면서부터 도(道)를 알았고, 지략이 있었으며, 배우지 않고도 능히 천문에 통하고 팔진도(八陣圖)까지 통하였다. 1671년(현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에 이르렀고, 선전관(宣傳官)으로 재임하며 북벌(北伐)에 대한 소장을 누차에 걸쳐 올렸다. 당시 조정 대신들은 고몽설의 소장에 관해 논의하였으나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은 고몽설의 의기를 장하게 여겼으나 그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무관이 되어 북적(北狄)을 소탕하고자 했던 고몽설은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한탄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문행(文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