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중앙종문회 02)755-0919
고씨종문회총본부 064)751-0711, 758-5355
만든이 중시조32세손 고재민 jemina23@naver.com

종문자료실

Created with Sketch.

고씨 열효비(髙氏 烈孝碑)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18-11-13 10:59
조회
2729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열효비 故金汝彬妻髙氏若其男金才明烈孝碑
시대 : 조선(1865)
비석 건립 : 일본강점기(1933)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북촌초등학교 앞 일주도로에서 약간 서쪽으로 가면 남쪽으로 난 소로가 있는데 이 길을 따라 60여m쯤 되는 곳 길 동쪽 소나무 사이에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故金汝彬妻髙氏若其男金才明烈孝碑〕(고김여빈처고씨약기남재명열효비)라고 새겨져 있다. 원래는 큰길가에 있었는데 도로확장 공사 때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로 되어 있는 부분은 컴퓨터에서 지원되지 않는 한자임)

故金汝彬妻髙氏若其男金才明烈孝碑(고김여빈처고씨약기남김재명열효비) ; 고 김여빈 처 고씨 및 그 아들 김재명 열효비

竊謂(절위): 가만히 생각해보건데
知古今而後 可與語難易(지고금이후 가여어난이): 옛날과 현재를 안 이후에 더불어 난이(難易)를 말할 수 있다.
今則舟車無遠不近 (금칙주차무원불근): 요즘은 배나 수레가 다님에 먼 지방도 가깝지 않은 곳이 없으니
東亞西歐如隣里(동아서구여린리): 동아시아와 서구유럽이 이웃마을과 같아서
雖婦女出入 與丈夫無異(수부녀출입 여장부무이): 비록 부녀자들의 출입도 장부로 더불어 다름이 없으나
而古則畏海如死地 行遠如上天(이고칙외해여사지 행원여상천): 옛날엔 바다 두려워하기를 사지(死地)와 같이하고  멀리 가는 것을 하늘에 오르는 것 같이 하여
雖丈夫 猶?? ?婦女乎(수장부 유자저 황부녀호):비록 대장부라도 오히려 자저(주저함, 머뭇거림)하거늘 하물며 부녀자임에랴!
今則人死 埋共地 投火坑 不恥(금칙인사 매공지 투화갱 불치): 요즘은 사람이 죽으면 공동묘지에 묻거나 불구덩이에 던져 넣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나
古則旅死者 必歸?先塋爲重(고칙여사자 필귀부선영위중): 옛날엔 나그네로 죽은 사람은 반드시 모시고 돌아와 선영에 부장하는 것을 중하게 여겼다
而惟家族中 有男子力强者 能之(이유가족중 유남자역강자 능지): 그러나 오직 가족 중 남자로 힘써 애쓰는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었고
婦女則不百里奔喪(부녀칙불백리분상):부녀자들은 백리 밖에 분상을 하지 않는다하였으니
非特禮然 實無所施力(비특례연 실무소시력): 단지 예법이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시행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故 寡婦孤兒 抱終天痛寃者多(고 과부고아 포종천통원자다): 그러므로 과부 고아들은 평생 원통함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다.
是不可以今之易易古之難也(시불가이금지이역고지난야): 이는 현재(사람들)의 간이(簡易)하게 하는 것으로 옛날(사람들)의 어렵게 한 것을 쉽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즉 어렵게 죽은 이를 운구하여 선영에 부장할 필요가 있느냐. 그냥 쉽게 현지에 무덤을 만들어 매장을 하면 된다고 하는 생각으로 옛사람들을 업신여겨 평가할 수 없다. 易易에서 앞에는‘이’로 뒤에는‘역’으로 하면 오늘날 쉬움으로써 옛날의 어려움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再去甲子年 濟之禾北里 金汝彬(재거갑자년 제지화북리 김여빈): 두 번 지난 갑자년에 제주 화북리 김여빈은
家貧業船 海上遇?(가빈업선 해상우구): 집안이 가난하여 배 부리는 일(고기 잡는 일)을 하다 해상에서 구풍을 만나
漂泊於中國福建境(표박어중국복건경): 중국 복건성 지경에 표류하여 닿았는데
縣次傳送 中路?疾 到柵門以死 權埋其地(현차전송 중로구질 도책문이사 권매기지): 역참에서 역참으로 전송해 주었는데 중도에 질병에 걸려 책문에 이르러 죽으니 그 곳에 임시로 매장을 하였다
妻髙氏念家族無男子用力者(처고씨염가족무남자용력자): 처 고씨는 가족 중에 남자로 힘 써 줄 사람이 없다고 여기고
遂携十三歲幼孤才明(수휴십삼세유고재명):마침내 열세살 어린 고아 재명을 이끌고
轉轉行乞 到得三千里之義州(전전행걸 도득삼천리지의주): 이리저리 걸식을 하며 길을 가 삼천리 밖의 의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斂束遺骸 或負或戴而歸(렴속유해 혹부혹대이귀):유해를 염하여 묶고 혹은 등에 지기도하고 혹은 머리에 이기도 하며 돌아오니
義尹畿伯 咸加矜賞?財縣傳(의윤기백 함가긍상신재현전):의주 부윤과 경기도 관찰사가 모두 불쌍히 여겨 상으로 노잣돈과 역말을 내려주어
得葬故山 何其烈也(득장고산 하기열야): 고향 선산에 장사 지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열녀이던가?
才明稍長率母移居于外家里北村(재명초장솔모이거우외가리북촌):재명은 점차 장성하여 모친을 모시고 외가마을인 북촌에 이주하여 살았는데
竭力率眷以安母心 其孝亦嘉(갈력솔권이안모심 기효역가): 힘을 다해 가족을 부양하고 어머니 마음을 편안케 하니 그 효성 또한 아름답도다.
是宜自國可旌 自文士詩人可紀頌(시의자국가정 자문사시인가기송): 이는 마땅히 나라로부터 정려(旌閭)할만 하고, 문사시인으로부터 역사에 기록하여 칭송(稱頌)할만 한 것이다
而寥寥過周甲 其村樹風聲 不能無憾(이요요과주갑 기촌수풍성 불능무감):적막하고 쓸쓸하게 60여년이 지나버렸으나 그 마을에 세워진 훌륭한 명성은 감회가 없을 수 없도다.
面內人士將立石示後(면내인사장립석시후): 면 내 인사들이 장차 비석을 세워 후세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여
使才明獅孫 韓伯興 越海 請所刻 以不??居濟也 誼豈忍辭(사재명사손 한백흥 월해 청소각 이불녕구거제야 의기인사)재명의 외손 한백흥으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와 새길 바를 청하니 내(不?)가 옛적에 제주에 거주하였기 때문이라. 정의(情誼)로 볼 때 어찌 차마 사양할 수 있겠는가?
謹書古今難易如右 以曉今之易古者(근서고금난이여우 이효금지이고자): 삼가 고금의 난이에 대해 오른쪽과 같이 쓰고 요즘사람들이 옛사람들이 한 것에 대해 쉽게 여기고 있음을 밝히노라
歲癸酉維夏 浮海逸人 安宅承 記(세계유유하 부해일인 안택승 기): 계유년 여름 부해일인 안택승이 기술하다
昭和八年秋 新左面 有志 一同 謹竪(소화팔년추 신좌면 유지 일동 근수): 소화 8년 가을 신좌면 유지 일동이 삼가 세우다. (김태국 선생 해석)

이 글을 쓴 이는 안택승이며, 세운 해는 소화8년, 세운 이는 신좌면 유지 일동이라고 되어 있다.  제주도의 수많은 효열비의 건립자가 모두 후손들임에 비하여 면의 유지들이 비를 세워 주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제주향교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효자 재명의 모친이다. 집이 가난하여 남편은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였는데 바다에 나갔다가 바람을 만나 중국 복건성에 표착하였는데 육로로 돌아오다가 의주에서 죽었다. 고씨는 13세의 아들 재명을 데리고 의주까지 가서 반장을 하니 의주부윤이 노자를 보태 주고 경기감사는 역마를 내 주어 이어가며 호송하여와서 선산 밑에 안장하니 고종2년(1865) 양헌수 목사가 아뢰어 정표되었다.〉(제주향교지 6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