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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후(髙榮厚) 기념비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17-10-19 09:29
조회
5665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큰솔동산 비석거리
시대 : 일제강점기
규격 : 36.5㎝×16.5㎝×99㎝

대포동은 풍수적 지형 조건으로 봤을 때 부족함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 결함을 보(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답이다. 지형상 마을 한 쪽이 공허하면 그곳에서 온갖 재액(災厄)이 몰려든다는 풍수지리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욱대는 뜬귀의 범접을 막고 마을 사람들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누리게 하려는 목적에서 쌓는다. 일종의 마을수호신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포동의 답들은 모두 견고한 성담 형태로 두껍고 높게 쌓았다.

1915년 무렵 고영후는 이장이었다. 이 때 답(거욱대)을 쌓는 공사를 했다. 답을 쌓을 때에는 반별로 주민을 동원하였는데 고영후 이장은 공사를 하는 주민들에게 자기가 재배한 담배를 한 접씩 나누어 주며 격려했다고 한다. 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幼學髙榮厚紀念碑 惟我洞里之地形三方空虛而其中南方大虛 故前人有意於埋谷而未果者久矣 至于今年有志人髙榮厚適在里長之職 凡諸保民之道 無不專心而惟此防虛之事 尤用銳意以一百金買得基地後與副里長任光春主碣始役 人民爭先赴役築之五日 三方之功俱成而大功特在於南方矣 此役告竣後洞里之形勝宏壯人民之福音將進 此則前人未遑之事 而千載奇遇之時也 於是乎同志數士恐其豊功泯滅故建碣而以表爲記予固辭未得而不揆手卑工拙玆記著作耳 贊成人 李復允 著作者 金光鏞 大正三年一月二十五日 西紀1991年辛未8月 大浦洞民一同 改建

▒ 번역문 : 생각하건대 우리 마을의 지형은 세 방향이 공허한데 그 중에서도 남쪽이 크게 허하였다. 그러므로 선인들이 골짜기를 메우려는 뜻이 있었으나 아직 수행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금년에 이르러 유지인사인 고영후공께서 마침 이장직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로 마을 사람들을 보호할 방도에 전심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오직 이 허한 곳을 방비하는 일에 더욱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백금으로 그 땅을 산 뒤 부이장 임광춘과 함께 주관하여 역사를 시작하였다.

마을 사람들도 앞을 다투어 서로 일을 도우니 메우기 시작한 지 5일만에 세 방향의 공사가 다 이루어졌으며 특히 큰 공사는 남쪽에 있었다. 이 역사가 완공된 뒤 마을의 형승이 굉장하고 마을 사람들의 기쁜 소식이 나날이 나아졌다. 이 공사는 곧 선인들이 미처 겨를을 내지 못했던 일이나 오랜 세월 동안에 기이하게 만난 기회였다.

이에 뜻을 같이 하는 몇 선비들이 매우 큰 공훈의 자취가 아주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비갈을 세우고 사실을 표시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내 굳이 사양하였으나 승낙을 얻지 못하고 재주가 없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에 기록하여 저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