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준 판관 선정비(判官 髙景晙 善政碑)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18-08-12 09:42
조회
26827
두모리 판관 고공경준 선정비(判官 髙景晙 善政碑)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 2869-2 한경면사무소 울타리 동쪽안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건립년대 : 조선(1885년)
유 형 : 선정비
규 격 : 높이 65㎝, 너비 35㎝, 두께 10㎝
비문
전면 : 가운데 큰 글씨로〈判官髙公景晙善政碑〉 우측에 두 줄로〈損稟滅未 反◇(판독불능)爲豊〉 좌측에 두 줄로 〈去而益詠 今我召公〉
후면 : 〈光緖十一年三月日 丙申夏 曾孫 大鍾 英鍾 購得午土 移竪于乾始 門外以表 不忘之咸〉
좌측면 : 〈舊右面頭毛〉
내 용
1839년 9월 29일에 중추부사(中柩府事)였던 고영주(髙渶柱)의 차남으로 제주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영운(靈雲), 자는 진경(晋卿)이다.
철종14년(1863)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부정자(承政院副正字),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선략장군(宣略將軍),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병조 및 예조 좌랑(兵曹禮曹佐郞),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 전라도사(全羅都事), 종친부정전적(宗親府正典籍), 제주판관(濟州判官) 등 많은 직을 역임한 사람이다.(濟州鄕校誌 731쪽) 제주 지역의 발전과 유학 발전에 힘쓰다가 1897년 12월 5일에 향년 50세로 별세했다.
이 비는 판관 고경준에 대한 선정비로 고종 20년(1883) 6월(당시 고경준 45세)부터 1885년 4월까지 제주판관으로 봉직할 당시 극심한 흉년으로 기근에 처해 있는 백성이 부담할 환곡을 녹봉으로 감하여 준 공을 기려 동년 5월에 당시 구우면 두모(지금의 금등 신창 한원 용수) 백성이 지금의 두모리에 세웠는데 사삼사건 당시 오인사격에 의해 훼손되고 뽑아눕혀 방치된 것을 1956년 여름에 후손 고대종 고영종씨가 삼성혈 동쪽 벽에 옮겨 세웠다.(위 사진) 1997년 11월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북제주군 비석총람 814쪽)
화북 비석거리에도 고경준 거사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