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오(髙平吾) 초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18-03-19 09:37
조회
25114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69호
지정연도 : 1979년 1월 23일
소 재 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809
시 대 : 조선시대
유 형 : 고건물(민가 초가)
분 류 : 가옥
18세기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가옥은 성읍 민속마을의 주요 도로였던 남문 길가에 있고 이문간이 뚜렷해서 얼른 보아도 고풍(古風)스런 느낌을 준다.
이문간을 들어서면 마당을 중심으로 남향인 안거리(18평)와 북향인 밖거리(17평)가 마주하여 서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79년 보수한 것이다. 전에는 마당 서쪽에도 동향으로 모커리가 있어서 건물들이 모양으로 배치되었었으나 그 모커리는 1970년 헐어 버렸다. 대지가 널찍해서 325평에 이르는데 '안뒤'에는 장독대가 놓이고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고 밖거리 뒤에는 우영이 있다.
안거리 상방문에는 이른바 '호령창'이라는 작은 문이 달려 있는데 이는 제주도에서도 남부 지역 일부에서만 전해지는 가옥 형태이다. 안거리 정지에는 돌을 네모로 둘러박아서 만들어진 붙박이화로인 '부섭'이 있었는데 1979년 보수할 때 없애 버렸다. 더욱이 1979년 보수 때에는 안거리 주춧돌이 시멘트로 바꿔져 버려 아쉬움이 남는다.
밖거리는 현청소재지 당시부터 면사무소가 표선리로 옮겨질 때가지 관원들이 숙식을 하던 곳이어서 제주도내 다른 집의 구조와는 다르다. 즉, 상방이 집 한가운데 있지 않고 동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뒤쪽 툇마루가 있을 자리에는 골방이 달려 있다. 모커리는 '수레간'과 '남방애' 등을 보관하던 헛간과 '쇠막'으로 쓰였다.
1970년대초까지 고평오씨와 그의 부친이 이 가옥에 함께 살 때에는 고평오씨가 독립 생계를 갖춤에 따라 그의 부친이 밖거리로 옮기고 안거리를 아들에게 내어주었다. 당시 중요한 소득원이 되는 '통시'도 모커리 남쪽과 밖거리 뒤쪽 두 곳에 나누어 마련되어 각각 따로 쓰게 되었었다.
대문 밖 길 건너 맞은 편에는 음료수를 공급하던 '남문통(관청물)'의 터가 남아 있다. 이젠 움푹 패인 채 그 자취만 남아 있지만, 이 물은 정의고을 관원들만이 마실 수 있었던 물인데 이 가옥의 밖거리가 관원들의 숙식처였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