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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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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준(髙相俊) 독립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0:41
조회
281
1900년 12월 17일 충남 논산군 강경읍 중앙동 236번지에서 출생

1919년 당시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 살던 중 1919년 3월 10일 곽성진(郭性鎭)·석광열(石光烈)·박금봉(朴今奉)·추병갑(秋炳甲)·김종갑(金鍾甲) 등과 함께 사립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이 주도하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고상준은 1919년 3월 8일 강경읍에서 조선종이 60매, 물감 30전(錢) 어치를 구입하여 엄창섭, 추병갑 등과 함께 창영학교에서 태극기를 그리기 시작했고, 9일부터 10일 아침까지는 김종갑, 추성배(秋聖培) 등이 협력하여 2백여 개의 태극기를 완성했다.

10일 아침 서삼종(徐三鍾)이 태극기를 가마니 속에 넣어 지게로 집합장소인 강경읍 옥녀봉으로 운반하였다. 오후 3시가 되자 고상준 등은 군중 500여 명과 함께 옥녀봉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시위는 강경 웃시장(上市場)으로 확산되어 그곳 군중들도 합세하였다.

고상준은 당시 시위대에 맞서 출동한 재향군인(在鄕軍人)과 소방조(消防組) 등에게 검거되어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1년형을 받고 공소를 신청했으나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재차 징역 1년형을 확정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7월 25일 사망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