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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19-09-06 11:20
조회
26301

30권 4책. 목판본. 〈대명률〉은 고려말부터 연구되었으며 조선 태조가 즉위하면서 범죄를 다스림에 반드시 적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용어가 어렵고 생소해 이해하기가 힘들었으므로, 조준에게 명하여 알기 쉽게 해석하도록 했다. 고사경(髙士褧)·김지(金祗)가 이두를 사용하여 직해했고, 정도전과 당성(唐誠)이 윤색하여 1395년(태조 4) 간행했다.

그뒤 1446년(세종 28) 평안감영에서 중간(重刊)했다. 〈대명률〉이 〈대명률직해〉의 내용으로 적용되어 통일된 법 집행을 할 수 있었으나 특수한 사건에 획일적으로 〈대명률〉을 유추, 적용하는 폐단이 있었다. 〈대명률〉을 원문 그대로 직해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맞도록 고쳤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표현이 적지 않다.

한자어의 원문을 그대로 옮겨온 경우도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로 대부분 바꾸었다. 그래서 원문의 1글자가 이두문에서는 2자 이상의 한자숙어로 된 것이 많다. 국어와 한문의 어순이 뒤섞였으며 이두는 조사와 어미가 주를 이루고 명사·대명사·동사·부사 등도 쓰였다.

〈대명률직해〉는 훈민정음 창제 50년 전에 씌어진 것이나 15세기 국어와 비교하여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15세기의 '아니'에 해당되는 말은 '不冬/안달','不喩/안디'로 나뉘어 있어 '不冬'은 동사문의 부정에 '不喩'는 명사문의 부정에 쓰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구별은 고대국어의 문법이 보수적으로 유지되어 온 것으로 보여지는데, 조선 말기의 이두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는 고려 이전 국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책이 14세기말에 간행되었으나 고대와 중세 초 국어의 자료로 다루어질 수 있다.

▒ 상세설명

*고사경(髙士景)

고려말과 조선초의 학자.  

증조부는 동지밀직사사 세(世), 할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侯) 대명(大明),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영(瑛)이다.

고려 우왕 때 지인상서(知印尙書)를 지내고, 1392년 조선이 개국한 뒤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를 역임하였다.  

조선 개국초에 조준(趙浚)의 건의로 김지(金祗) 등과 함께 이두(吏讀)로 자구를 직해한 《대명률직해 大明律直解》를 편술하였으며, 정도전(鄭道傳)·당성(唐誠) 등이 이를 윤색하였다.

조선에서의 관직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