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간(髙貞幹) 7대(代) 성주(星主)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1:39
조회
362
중시조 성주공 말로(末老)의 7세손이며 시랑공(侍郞公) 여림(汝霖)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으나 아버지가 삼별초난(三別抄亂)으로 전사하자 성주(星主)작을 계승하였다.
당시 탐라는 몽고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병란과 흉년등으로 혼란한 시기였으므로 몽고는 탐라를 회유하기 위해 성주의 직분을 인정하였다.
몽고는 탐라에 죄인 수백명을 유배(流配)시켜 치안을 문란케 하였으며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고 소, 말 등을 무질서하게 방목하여 농작물울 망치게 하였다.
공(公)은 성주로서 이러한 폐단을 시정토록 고려조정과 몽고에 강력히 요구하였다.
1276년(충열 2) 3월, 몽고의 임유간(林惟幹)등이 탐라의 토산물인 빈주(蠙珠:진주)를 채취하러 왔다가 태풍으로 차질이 생기자 빈주를 바치려고 횡포를 부리므로 공(公)은 빈주(蠙珠:진주) 백여개를 구하여 보냈다.
다음 달에 공이 상경하여 입궐(入闕)하니 왕은 성주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한 것을 치하하여 사물(賜物)을 내리고 중추원부사(中樞院府使), 지신사(知申事)를 제수하였다.
당시 탐라는 몽고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병란과 흉년등으로 혼란한 시기였으므로 몽고는 탐라를 회유하기 위해 성주의 직분을 인정하였다.
몽고는 탐라에 죄인 수백명을 유배(流配)시켜 치안을 문란케 하였으며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고 소, 말 등을 무질서하게 방목하여 농작물울 망치게 하였다.
공(公)은 성주로서 이러한 폐단을 시정토록 고려조정과 몽고에 강력히 요구하였다.
1276년(충열 2) 3월, 몽고의 임유간(林惟幹)등이 탐라의 토산물인 빈주(蠙珠:진주)를 채취하러 왔다가 태풍으로 차질이 생기자 빈주를 바치려고 횡포를 부리므로 공(公)은 빈주(蠙珠:진주) 백여개를 구하여 보냈다.
다음 달에 공이 상경하여 입궐(入闕)하니 왕은 성주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한 것을 치하하여 사물(賜物)을 내리고 중추원부사(中樞院府使), 지신사(知申事)를 제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