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 왕의 복식 복원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19-12-09 14:15
조회
43167
제주불교본사 관음사에서 봉행되는 한라산 영산대재는 전통문화복원 차원에서 그 정신과 의례를 전도적인 범위에서 재현된다는 기본 취지와 함께 당시 탐라국왕, 즉 성주의 복식이 복원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라산 영산대재 제관복식을 고증·복원한 임명미 교수(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의 복원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을 정리해 싣는다.
오늘날의 제주도로 발전해오기까지의 과정 중 한반도 대륙국에 대하여 독립외국(獨立外國), 탐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10세기 초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 후 탐라국주의 조공을 이국(異國)왕의 신분으로 예우하고 왕에게 성주작위를 사여한다.
이에 고려시대 탐라 성주, 당시 탐라국 왕의 복식을 복원하여 이를 현 제주특별자치도의 수장(首長)인 도지사가 착용하고 예를 집행하게 함으로써 고대 탐라국의 전통과 문화를 재현·창달하고,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영산대재를 거행하는 전통문화행사를 재현, 이를 전승발전시키고자 한다.
제주도에는 고고학적 발견 유적·유물로 보아 구석기시대이래 읍국(소국)시대를 거치면서 탐라국이 한반도 대륙국에 대하여 고려 초기 이전까지 외국(異國)으로 존속, 대륙의 삼국(고구려·백제·신라)과 사국(고구려·백제·신라·가야), 당, 송, 왜 등과도 교류해 왔었다.
대륙에서 10세기 초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자 탐라국은 교류관계를 위해 고려에 조공했고 이에 태조 왕건은 탐라국주를 외국의 국왕으로 예우하고 ‘성주(星主)’ 작위를 하사한다.
이로써 탐라국의 국주(왕)는 성주 작위를 가지게 되며 문헌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대개 작위 하사 후 그 품(品)에 해당하는 복식을 사여하는 관례에 따라 고려는 탐라국왕에게 고려의 번국(蕃國) 왕급(王級), 고려 관계에 비해 2등급이 낮은 (고려 관계 1∼3품급)관복을 인수(印綬)와 같이 사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초기에는 정복전쟁 등 수행할 일이 많아 행례(行禮)시 의복제도를 후삼국시대 남국신라의 의복제에 준했었음으로 고려초기 백관은 품급에 따라 ‘조복’과 ‘공복’제도로 대소행례시 예를 거행했었다.
이로 보아 태조는 탐라국왕에게 성주작위 하사시 고려 관계 1∼3품급 조복을 하사하고 왕자나 도내 등 관직자들에게는 품급에 따른 공복을 차등 있게 사여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탐라국은 고려가 사여한 왕 및 관직자 복식의 차등에 따른 관치(官治)를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영산대재 거행시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는 왕급 성주의 대례복인 고려 관품 1품에 해당하는 강색 조복을, 행정부시장 두 명은 2품급 강색 조복을 착용하고 행예할 수 있게 복원하되 1품과 2품복의 차이는 복식의 수식재료·대수·소수·패옥 색·옷 문양 등으로 구분했다.
또한 집사자와 행례시 종관 예복은 고려 백관 4∼5·6∼7·8∼9품급 자·비·록 3색 공복으로 복색과 문양, 수식재료인 패어(금어, 은어), 혁대, 홀 등으로 신분을 차등 있게 복원했다.
-자료출처 : 제주불교신문 2006년9월21일자 -
▒ 상세설명
*대례복(大禮服) : 국가의 중대한 의식 때 입는 예복을 일컫는 말
*조복(朝服) : 나라의 대사(大祀)·경축일·원단 (元旦)·동지 및 조칙(詔勅)을 반포할 때나 진표(進表)할 때에 입었던 관복. 조근(朝覲)의 복이라고 하여 왕이나 신하가 천자에게 나아갈 때 입는 옷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공복(公服) : 관원(官員)이 조정(朝廷)에 나아갈 때 입는 관복(冠服)
한라산 영산대재 제관복식을 고증·복원한 임명미 교수(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의 복원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을 정리해 싣는다.
오늘날의 제주도로 발전해오기까지의 과정 중 한반도 대륙국에 대하여 독립외국(獨立外國), 탐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10세기 초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 후 탐라국주의 조공을 이국(異國)왕의 신분으로 예우하고 왕에게 성주작위를 사여한다.
이에 고려시대 탐라 성주, 당시 탐라국 왕의 복식을 복원하여 이를 현 제주특별자치도의 수장(首長)인 도지사가 착용하고 예를 집행하게 함으로써 고대 탐라국의 전통과 문화를 재현·창달하고,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영산대재를 거행하는 전통문화행사를 재현, 이를 전승발전시키고자 한다.
제주도에는 고고학적 발견 유적·유물로 보아 구석기시대이래 읍국(소국)시대를 거치면서 탐라국이 한반도 대륙국에 대하여 고려 초기 이전까지 외국(異國)으로 존속, 대륙의 삼국(고구려·백제·신라)과 사국(고구려·백제·신라·가야), 당, 송, 왜 등과도 교류해 왔었다.
대륙에서 10세기 초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자 탐라국은 교류관계를 위해 고려에 조공했고 이에 태조 왕건은 탐라국주를 외국의 국왕으로 예우하고 ‘성주(星主)’ 작위를 하사한다.
이로써 탐라국의 국주(왕)는 성주 작위를 가지게 되며 문헌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대개 작위 하사 후 그 품(品)에 해당하는 복식을 사여하는 관례에 따라 고려는 탐라국왕에게 고려의 번국(蕃國) 왕급(王級), 고려 관계에 비해 2등급이 낮은 (고려 관계 1∼3품급)관복을 인수(印綬)와 같이 사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초기에는 정복전쟁 등 수행할 일이 많아 행례(行禮)시 의복제도를 후삼국시대 남국신라의 의복제에 준했었음으로 고려초기 백관은 품급에 따라 ‘조복’과 ‘공복’제도로 대소행례시 예를 거행했었다.
이로 보아 태조는 탐라국왕에게 성주작위 하사시 고려 관계 1∼3품급 조복을 하사하고 왕자나 도내 등 관직자들에게는 품급에 따른 공복을 차등 있게 사여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탐라국은 고려가 사여한 왕 및 관직자 복식의 차등에 따른 관치(官治)를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영산대재 거행시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는 왕급 성주의 대례복인 고려 관품 1품에 해당하는 강색 조복을, 행정부시장 두 명은 2품급 강색 조복을 착용하고 행예할 수 있게 복원하되 1품과 2품복의 차이는 복식의 수식재료·대수·소수·패옥 색·옷 문양 등으로 구분했다.
또한 집사자와 행례시 종관 예복은 고려 백관 4∼5·6∼7·8∼9품급 자·비·록 3색 공복으로 복색과 문양, 수식재료인 패어(금어, 은어), 혁대, 홀 등으로 신분을 차등 있게 복원했다.
-자료출처 : 제주불교신문 2006년9월21일자 -
▒ 상세설명
*대례복(大禮服) : 국가의 중대한 의식 때 입는 예복을 일컫는 말
*조복(朝服) : 나라의 대사(大祀)·경축일·원단 (元旦)·동지 및 조칙(詔勅)을 반포할 때나 진표(進表)할 때에 입었던 관복. 조근(朝覲)의 복이라고 하여 왕이나 신하가 천자에게 나아갈 때 입는 옷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공복(公服) : 관원(官員)이 조정(朝廷)에 나아갈 때 입는 관복(冠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