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에 오류가 있는 듯 합니다.
작성자
고영복
작성일
2012-02-11 19:36
조회
981
족보 정리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네요.
제가 문충공파 족보를 보고 만든 표와 많이 달라요
장흥백파와 문충공파는 1세대만 차이가 납니다.
저는 시조80,중시조35,상당군32=장흥백26=화전군25=문충공25세입니다.
부친은 0진[쇠금] 나는 영0[길영] 자식은 0식[나무식] 이후는 어떻게 할지를 모릅니다.
돌림자를 찾다가 이 홈을 보앗네요.
010 2389 6884로 연락 주시요
참 훌륭한 일 하십니다...
통일한 왕건의 침공은 서기 936년,
제주 탐라왕국시대 끝나고,성주(세습)가 되다.
말로의 직계 자손들은 고려 조정에 입조하다.
1273 몽고군 침공하고 말사육하여 진상하다.
이조시대 지방관 제주목사부임하다
말로1
4
5
양평군 지평면 석불 고씨
世鎭
永福
俊植
제주 고씨(濟州高氏)가 내륙(內陸)에 진출(進出)하여 명성(名聲)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성주공(星主公) 말로(末老)의 맏아들 유(維)가 고려조(高麗朝)에서 남성시(南省試)에 장원(壯元)하여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 우복야(右僕射:상서도성에 속한 정2품 벼슬)에 이르렀고, 그의 아들 조기(兆基)는 예종조(睿宗朝)에 문과(文科) 급제하고, 그로부터 제주 고씨(濟州高氏)는 고려조(高麗朝)에서 9상서(尙書) 12한림(翰林)의 명현(名賢)을 배출하였고,조선조(朝鮮朝)에서도 수많은 인재(人才)를 낳아 도덕(道德)과 문장(文章)으로 또는 학행(學行)과 충효(忠孝), 의열(義烈) 등으로 역사를 수(繡) 놓아 탐라왕족(耽羅王族)으로서의 긍지(矜持)를 세습(世襲)하며 명문(名文)의 기틀을 다져왔다.
조선초기(朝鮮初基)에 제주 고씨(濟州高氏)를 빛낸 인물(人物)인 영곡공파조(靈谷公派祖) 득종(得宗)은 전서공(典書公) 신걸(臣傑)의 손자(孫子)이며 상장군(上將軍) 봉지(鳳智)의 아들로 1414년(태종 14)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고 대호군(大護軍)과 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 : 외국사절의 연향과 종실 ,재신의 음식 공괘를 관장하던 종5품 벼슬)을 거쳐 1427년(세종 9)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올랐다.
한편 득종(得宗)의 아들 태필(台弼), 태정(台鼎), 태보(台輔), 태익(台翼) 4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
조선개국공신(朝鮮開國功臣) 여(呂)는 나라에 공(功)을 세워 고성부원군(高城府院君)에 봉해졌고,
화전군(花田君) 인비(仁庇)의 8세손(世孫)이며 사신(思信)의 아들 형산(荊山)은 연산조(燕山朝)에 해주 목사(海州牧使), 와 병마절도사를 거쳐 중종반정 후 형조, 호조, 병조(兵曹)의 판서(判書)를 역임했으며 우찬성
문충공 고경(文忠公 髙慶)은 시조(始祖)고을라왕의 56세손(世孫)이 되시며
중시조(中始祖) 말로(末老)의 11세손(世孫)이 되시며
문충공파(文忠公派) 파조(派祖) 1세가 됩니다. 경(慶)의 아들인
문영공 고용현(文英公 髙用賢)은 문충공파 2세손(世孫)이 됩니다.
*석불 고씨 영자 돌림은 문충공파 25세손, 중시조 35세손, 시조 80세손 이다.
따라서 족보상으로 볼 때 10개파가 있고, 족보책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가계들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가 문충공파 족보를 보고 만든 표와 많이 달라요
장흥백파와 문충공파는 1세대만 차이가 납니다.
저는 시조80,중시조35,상당군32=장흥백26=화전군25=문충공25세입니다.
부친은 0진[쇠금] 나는 영0[길영] 자식은 0식[나무식] 이후는 어떻게 할지를 모릅니다.
돌림자를 찾다가 이 홈을 보앗네요.
010 2389 6884로 연락 주시요
참 훌륭한 일 하십니다...
통일한 왕건의 침공은 서기 936년,
제주 탐라왕국시대 끝나고,성주(세습)가 되다.
말로의 직계 자손들은 고려 조정에 입조하다.
1273 몽고군 침공하고 말사육하여 진상하다.
이조시대 지방관 제주목사부임하다
말로1
4
5
양평군 지평면 석불 고씨
世鎭
永福
俊植
제주 고씨(濟州高氏)가 내륙(內陸)에 진출(進出)하여 명성(名聲)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성주공(星主公) 말로(末老)의 맏아들 유(維)가 고려조(高麗朝)에서 남성시(南省試)에 장원(壯元)하여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 우복야(右僕射:상서도성에 속한 정2품 벼슬)에 이르렀고, 그의 아들 조기(兆基)는 예종조(睿宗朝)에 문과(文科) 급제하고, 그로부터 제주 고씨(濟州高氏)는 고려조(高麗朝)에서 9상서(尙書) 12한림(翰林)의 명현(名賢)을 배출하였고,조선조(朝鮮朝)에서도 수많은 인재(人才)를 낳아 도덕(道德)과 문장(文章)으로 또는 학행(學行)과 충효(忠孝), 의열(義烈) 등으로 역사를 수(繡) 놓아 탐라왕족(耽羅王族)으로서의 긍지(矜持)를 세습(世襲)하며 명문(名文)의 기틀을 다져왔다.
조선초기(朝鮮初基)에 제주 고씨(濟州高氏)를 빛낸 인물(人物)인 영곡공파조(靈谷公派祖) 득종(得宗)은 전서공(典書公) 신걸(臣傑)의 손자(孫子)이며 상장군(上將軍) 봉지(鳳智)의 아들로 1414년(태종 14)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고 대호군(大護軍)과 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 : 외국사절의 연향과 종실 ,재신의 음식 공괘를 관장하던 종5품 벼슬)을 거쳐 1427년(세종 9)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올랐다.
한편 득종(得宗)의 아들 태필(台弼), 태정(台鼎), 태보(台輔), 태익(台翼) 4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
조선개국공신(朝鮮開國功臣) 여(呂)는 나라에 공(功)을 세워 고성부원군(高城府院君)에 봉해졌고,
화전군(花田君) 인비(仁庇)의 8세손(世孫)이며 사신(思信)의 아들 형산(荊山)은 연산조(燕山朝)에 해주 목사(海州牧使), 와 병마절도사를 거쳐 중종반정 후 형조, 호조, 병조(兵曹)의 판서(判書)를 역임했으며 우찬성
문충공 고경(文忠公 髙慶)은 시조(始祖)고을라왕의 56세손(世孫)이 되시며
중시조(中始祖) 말로(末老)의 11세손(世孫)이 되시며
문충공파(文忠公派) 파조(派祖) 1세가 됩니다. 경(慶)의 아들인
문영공 고용현(文英公 髙用賢)은 문충공파 2세손(世孫)이 됩니다.
*석불 고씨 영자 돌림은 문충공파 25세손, 중시조 35세손, 시조 80세손 이다.
따라서 족보상으로 볼 때 10개파가 있고, 족보책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가계들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