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응후(髙凝厚) 조선 중기 의병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1:54
조회
454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 의병. 자는 여혼(汝渾)이고, 호는 지봉(芝峰)이며, 본관은 : 장흥(長興)이다.
증조부는 고운(髙雲: 1495∼?)이고, 아버지는 고경조(髙敬祖)이다.
작은아버지 고경명(髙敬命: 1533∼1592)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 때, 백성후(伯成厚)를 따라 권율(權慄: 1537∼1599)의 막하에 합류하여 전공을 세우고, 광해군 때 폐모론을 반대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동생 고의후(髙依厚)와 거의(擧義)하여 청주(淸州)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화의(和議)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며, 금성산(錦城山)에 들어가 돌아가셨다.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증직되었다.
증조부는 고운(髙雲: 1495∼?)이고, 아버지는 고경조(髙敬祖)이다.
작은아버지 고경명(髙敬命: 1533∼1592)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 때, 백성후(伯成厚)를 따라 권율(權慄: 1537∼1599)의 막하에 합류하여 전공을 세우고, 광해군 때 폐모론을 반대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동생 고의후(髙依厚)와 거의(擧義)하여 청주(淸州)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화의(和議)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며, 금성산(錦城山)에 들어가 돌아가셨다.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