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언(髙濟彦)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1:57
조회
452
1890년(고종 27)∼1973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자는 주언(周彦)이고, 호는 곤은(崑隱)이며, 본관은 : 장흥(長興)으로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태어났다.
숙부 수남(秀南) 고석진(髙石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천성이 너그러우며 용모가 단정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숙부 고석진이 최익현(崔益絃)을 따라 창의하였을 때, 많은 위험 속에서도 좌우의 옷깃에 밀서를 넣고 서울과 시골의 동지들에게 연락을 하러 다녔으며, 왜경에 발각되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숙부 고석진이 죽은 후, 고석진의 문집을 간행하였고 사우(祠宇)를 세웠다.
슬하에 아들 고총식(髙銃植)을 두었다.
세상을 떠난 후 사림(士林)에서 그의 지절을 높이 평가하여 추모비를 세워 주었다.
숙부 수남(秀南) 고석진(髙石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천성이 너그러우며 용모가 단정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숙부 고석진이 최익현(崔益絃)을 따라 창의하였을 때, 많은 위험 속에서도 좌우의 옷깃에 밀서를 넣고 서울과 시골의 동지들에게 연락을 하러 다녔으며, 왜경에 발각되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숙부 고석진이 죽은 후, 고석진의 문집을 간행하였고 사우(祠宇)를 세웠다.
슬하에 아들 고총식(髙銃植)을 두었다.
세상을 떠난 후 사림(士林)에서 그의 지절을 높이 평가하여 추모비를 세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