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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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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관(髙壽寬)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1:53
조회
397

생몰년 미상. 조선 순조 · 철종 때 활동하였던 판소리 명창으로 충청남도 해미(海美)에서 태어나 말년에는 공주에서 살았다.

판소리를 익혀 명창이 되었는데 뒤에 염계달(廉季達)의 영향을 받아 흥보가를 잘 불렀다 한다. 권삼득(權三得) · 모흥갑(牟興甲) · 염계달 · 송흥록(宋興祿) · 신만엽(申萬葉) 등과 함께 서울에서 공연활동을 벌여 이른바 판소리 8명창으로 꼽혔다.

순조 때 이들의 활동상황이 여러 문헌에 보이는데 흔히 고송렴모(髙宋廉牟)라 하여 네 명창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만년에는 고향에 내려와 있었고 80세가 넘게 살았는데 즉흥적으로 한시를 지을 만큼 학식이 있어 시서화(詩書畵) 3절이라 이르는 신위(申緯)와 교유가 깊었던 것이 자하(紫霞)의 문집에 보인다.

여러 청을 잘 구사하여 후세에 그를 ‘딴청일수’라 하였다. 춘향가 · 흥보가에 장하였고 특히 춘향가 가운데 자진사랑가를 잘 불렀다. 자진사랑가를 염계달 추천목으로 아기자기하게 불러 후세에 판소리 명창들이 이 대목을 부를 때에 흔히 ‘예전 장안(長安) 명창 고동지(髙同知)제로 사랑가를 부르겠다’고 말하고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하고 소리를 하는 수가 많다.

신재효(申在孝)는 그의 이런 아기자기한 음악성을 ‘고동지(髙同知) 수관이난 동아부자(同我婦子) 탑피남묘(?彼南畝) 은근문답(慇勤問答) 하는 거동 근과농상(勤課農桑) 백낙천(白樂天)’이라 하였다.

그의 자진사랑가는 오늘날 널리 불리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