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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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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수(髙福壽) 가수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1:50
조회
140

고 복 수 (1911 ~ 1972)
민족의 항일기로부터 1970년대 초까지 활약한 대중가수.
울산군 하상면 서리(울산시 중구 서동) 22번지 출생.

본관은 제주.  울산 일신보통(병영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다니다가 5학년초 부산 내성초등학교로 전학, 그곳에서 성장.

1932년 콜롬비아레코드사 주최 조선일보 후원의 전국 남녀가수 신인선발 대회에서 3등으로 입상, 가요계에 데뷔.

1933년 손목인 작곡의 <타향>(후일 타향살이로 개칭) 과 <사막의 한>을 불러 인기가수가 됐다.

1939년까지 오케이레코드사의 전속가수로 활약하면서 <짝사랑><휘파람><이원(梨園)의 애상><풍년송> 등을 불러 인기의 절정에 달했다.

1942년 이후 손목인과 더불어 <풍년송>을  부인(황금심)과 열창하였고,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도 활동했다.

공복후에는 전옥이 주관하던 백조악극단의 주요단원으로 활약했다.
1950년 북한군에게 붙잡혀 의용군으로 끌려갔으나 국군에게 구출되어 한동안 군예대에서 활동하였다.

1957년 8월 서울 명동 소재 시공관에서 가수생활 25년을 결산하는 은퇴공연을 가졌다.
1959년 동화백화점(現 신세계백화점 자리) 5층에 동화예술학원을 개설,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을 경영하면서 이미자, 안정애 등 인기가수를 배출했다.

1960년 극영화 <타향살이>를 제작했으나 흥행에 실패해 서적 외판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72년 2월 10일 연세대 의료원에서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세, 가족으로는 <알뜰한 당신>을 부른 원로가수 황금심과 아들 고용준 (가수) 등이 있다.

1.  타향살이 몇해던가 손꼽아 해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고

2.  부평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3.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런만
호들기를 꺾어 불던 그 때는 옛날

4.  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 고향 되는 것을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타향

지금도 변함없이 불려지고 있는 <타향살이>는 우선 그 가사가 우리 대중가요 중에서도 문학성이 매우 뛰어난 편에 속한다.

또 곡의 3박자가 우리 전래 민요의 장단이다. 3박자의 노래인 <아리랑>과 <도라지 타령>처럼 그 박자가 우리 겨레의 정조에 깊이 닿아 있다.

타향살이가 아직도 우리에게 친근한 것은 무엇보다 실향의식 때문이다.

당시 나라를 잃고 유랑하는 백성의 한을 담은 이 애조의 노래는 온 백성을 울렸다. 일제 강점하에서 타향살이의 설움을 받던 사람들은 너도 나도 <타향살이>를 듣고 부르면서 설움을 달랬다.

전국의 축음기 보급율이 30만대를 겨우 넘어서던 1935년께 <타향살이>는 짧은 기간내 5만정이 매진되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만주 하얼빈 용정 등 공연 때에는 동포들을 대성 통곡케 해 블랙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용정 공연에서는 이 노래를 듣고 자살한 사람까지 생겨나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유행가라고만 할 수 없는 플러스 알파가 얹힌 노래가 <타향살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