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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공훈 인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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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홍석(髙洪錫) 국내독립운동 [건국포장]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6 23:02
조회
41239

▒ 공적내용

출신지 : 전남 담양(潭陽)

임진왜란 당시 전남 담양에서 거의하여 항전하다 아들과 함께 순국한 고경명(髙敬命)의병장의 후손이다.

그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며 보통학교 교육과정을 독습해 오던 중 18세때인 1923년 '우리들 조선인은 약한 민족이므로 공부에 힘써 강한 민족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는 내용의 강연을 듣고 공부에 뜻을 세워 1924년 광주 소재 사립보통학교인 흥학관(興學館)에 입학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민족의식이 투철한 교사인 김재명(金在明)으로부터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것은 조선동포가 배움이 없었기 때문이니 마땅히 배움에 힘써 조선을 강대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는 내용의 교육을 받자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민족을 이끌 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이듬해 흥학관을 졸업한 후 일본 동경으로 도항하여 사립동경수의학교(私立東京獸醫學校)에 입학하였으나 중도퇴학하고1928년 귀국하였다.

이후 전북 전주(全州)에서 재목상(材木商)을 운영하며 생활하던 중 1940년 중일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제의 전시수탈이 극악해지자 침체된 국내 독립운동을 다시 흥기시킬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이해 10월 전북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의 육우정(六愚亭)이란 산장(山莊)의 벽면에 연필로 '대한독립 만세, 동포여 자각하자' 라는 내용을 크게 써서 주민들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일경에 체포되어 1942년 4월 2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註·判決文(1942. 4. 22. 全州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