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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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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401년 ~ 서기 1526년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4 07:30
조회
282
서기 1401, 갑신(甲申), 조선 태종4
○ 4월, 제주토관(濟州土官)의 호(號)를 개정함.
○ 왜구(倭寇), 고내(高內) 및 명월(明月)에 침입하여 방화 약탈함.

서기 1408, 무자(戊子), 조선 태종8
○ 1월, 동서아막(東西阿幕)을 폐지하고 감목관(監牧官: 판관(判官)이 겸임함)을 둠.
○ 9월, 제주의 공부(貢賦)를 정함,
○ 왜구들이 조공천(朝貢川)에 침략해옴
○ 5월, 태상왕(太上王 : 太祖)별세

▒상세설명
*동서아막(東西阿幕): 고려 후기 원나라가 제주에 만든 목장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아막은 부대, 조합, 부락, 단체, 주군(州郡)을 의미하는 몽골어로, 한문식으로 표기하여 애마(愛馬)라고도 한다. 제주 지역의 동과 서에 설치된 것이었기 때문에 동서아막이라고 불렀다.
*감목관(監牧官): 목장 업무를 담당하던 관직.
*공부(貢賦): 공물(貢物)과 부세(賦稅). 지방의 특산물을 나라에 물납(物納)하던 현물세

서기 1411, 신묘(辛卯), 조선 태종11
○ 탐라성주(耽羅星主) 고봉례(髙鳳禮), 아들 고상온(髙尙溫)에게 좌도지관(左都知管) 작호를 물려줌
○ 7월, 상장군(上將軍) 고봉지(髙鳳智) 별세
○ 12월, 성주 고봉례(髙鳳禮) 별세

서기 1415, 기미(己未), 조선 태종15
○ 5월, 왜구(倭寇), 제주의 여러 지방을 침입하여 약탈함.

서기 1419, 기해(己亥), 조선 세종1
○ 9월, 수조법(收造法)을 제정하고 양전(量田)하여 양곡을 비축함.

▒상세설명
*수조법(收造法): 배토(坏土)를 손으로 주물러서 내화물을 만드는 방법.
*양전(量田): 토지의 실제경작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토지측량 제도.

서기 1423, 계묘(癸卯), 조선 세종5
○ 정의현성(旌義懸城)을 이축(移築) 함. 왜적의 침입등으로 구치(舊治:古城)에서 진사리(晋舍里:城邑里)로 읍을 옮기고 축성(築城)함.
○ 1429년 영곡공 고득종(髙得宗)이 창안하여 처음으로 한라산(漢拏山) 주변에 돌담을 쌓고 목장을 만들어 방목함.(10所場의 始初)
○ 환해요소(環海要所) 22군데에 봉수후망대(烽燧候望臺)를 설치함.

서기 1427, 정미(丁未), 조선 세종9
○ 우마(牛馬)의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목장에 돌담을 쌓음.
○ 6월, 10개항의 민폐요소(民弊要素)를 상계함.
○ 1406년부터 육방(六房)의 향리(鄕吏)대신 두었던 전리제도 폐지
○ 성주, 왕자의 좌우도지관(左右都知管)은 그대로 두고 동서도사(東石司), 도진무(都鎭撫) 등 토관(土官)을 폐지함.

▒상세설명
*도진무(都鎭撫): 군기(軍機)에 참여하고 군령을 전달하며 제반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였다.

서기 1435, 을묘(乙卯), 조선 세종17
○ 안무사 최해산(崔海山) 재임시에 관부(도지관부)에 불이나 건물,사적(탐라사에 관한 고문헌)등 모두 전소됨.
○ 궁전유지(宮殿遺址)에 홍화각(弘化閣) 정각(政閣) 206칸을 건립
[영곡공(靈谷公) 고득종(髙得宗), 「홍화각」(弘化閣) 현판(懸板)과 각기(閣記)를 씀.그후 홍화각(弘化閣)은 실화(失火)로 불타 없어지고 현판(懸板)과 각기(閣記)만 삼성사(三姓祠) 숭보당(崇報堂)에 보관됨]
○ 각 교통 요지에 참(站)과 원(院)을 두고 육지출입관문지인 해남(海南) 해진성관(海珍城館)을 운영함.
○ 향교(鄕校)를 중수(重修)함.

▒상세설명
*향교(鄕校): 고려·조선 시대에, 지방에 있던 문묘(文廟)와 그에 속한 관립(官立) 학교.
*중수(重修):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

서기 1445, 을축(乙丑), 조선 세종27
○ 도주관(都州管)제도 폐지로 좌도지관(左都知管)은 상진무(上鎭撫), 우도지관(右都知管)은 부진무(副鎭撫)로 됨
[그후 1620년경 상진무(上鎭撫)는 진무(鎭撫)로 부진무(副鎭撫)는 유향(留鄕)으로 됨.]
○ 고승조(髙承祖), 삼읍도지상진무(三邑都知上鎭撫)가 됨.
[성주시대(星主時代) 이후로 내려오던 세습제도(世襲制度)는 폐지되고 선출제도(選出制度) 실시됨]
○ 장례의식(葬禮儀式)을 정립함.

▒상세설명
*도주관(都州管):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청도군을 ‘도주’라고도 부른다. 객사 안에는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위패에 절하는 곳인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사신이 묵고 갈 수 있는 숙박시설로 되어있다

서기 1448, 무진(戊辰), 조선 세종30
○ 무예수련장으로 주성(州城)내에 관덕정(觀德亭)을 창건함.

▒상세설명
*관덕정(觀德亭): 보물 제322호.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 1동에 자리한 군사훈련용으로 지어진 조선시대 건물.

서기 1451, 신미(辛未), 조선 문종1
○ 왜구(倭寇)의 침입을 격퇴함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환해장성(環海長成 : 일명 시랑성(侍郞城)을 보수하고 해변에 바윗돌을 깔아놓음.
[1450년 고맹운(髙孟蕓) 제주판관(濟州判官)으로 부임함.] ( ~1452)

▒상세설명
*환해장성(環海長成 ): 제주도의 해안선을 따라 쌓아 놓은 성벽

서기 1467, 정해(丁亥), 조선 세조13
○ 상호군(上濩軍) 고태필(髙台弼), 명(明)에 사신으로 가 여진(女眞)정벌의 전과(戰果)를 보고함.
○ 진(鎭)을 두어 본주(本州)는 중익(中翼), 정의(旌義)는 좌익, 대정(大靜)은 우익으로 구분함.
○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는 목사(牧使)가, 감목절제도위(監牧節蹄尉)는 판관(判官)이 겸임함.
○ 정의(旌義) 영천천(靈泉川)에 영천관(靈泉館 :[국립(國立) 여관겸 춘추(春秋)에 말을 점검하는 장소]을 세움

▒상세설명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 조선 시대에, 제주도에 둔 정삼품 무관 벼슬.

서기 1470, 병인(丙寅),조선 성종1
○ 목사 이약동(李約東), 한라산 아래에 신묘(神廟)를 세움.
[1253년부터 산정(山頂)에서 신제(神祭)를 지내다 동사자(凍死者)가 생기므로 산천단(山泉壇)으로 옮김]
○ 육지 도범자(盜犯者)들의 제주 유배(流配)를 금함.
○ 삼읍수령(三邑守令) 수렵때의 민폐를 없애고 진공물(珍貢物)의 헌상도 줄임.

서기 1510, 병오(丙午), 조선 중종5
○ 4월, 삼포왜란(三浦倭亂)일어남
○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명월목성(明月木城),별방진성(別防鎭城),조천성(朝天城) 애월성(涯月城),동해성(東海城),서귀성(西歸城) 등을 축성 보수 함.
○각산상(各山上 : 오름) 봉수대(烽燧臺) 등을 축성 보수 함.
○ 제주 유생(儒生)들이 평민의 문무향시(文武鄕試) 설치를 요구함.[1513년 무과향시(武科鄕試) 실시]
○ 군용도로(軍用道路), 훈련장(訓鍊場) 등 방호시설(防護施設)을 증설하여 군사훈련을 강행 함.
○ 과중한 부역(賦役)으로 민생고는 도탄에 빠짐

▒상세설명
*삼포왜란(三浦倭亂): 조선 중종 5년(1510)에 제포, 부산포, 염포의 삼포에서 왜인들이 활동 제한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폭동. 왜인들이 쓰시마 도주 [對馬島(대마도)] 의 지원을 받아 제포와 부산포를 함락하고 염포에 침입하였으나 곧 이들을 평정한 뒤에 삼포를 폐쇄하고 왜인을 쓰시마로 쫓아내었다.
*부역(賦役): 국가가 백성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징발하는 수취제도.

서기 1512, 임신(壬申), 조선 중종7
○ 좌우위랑(左右衛廊 : 左右衛軍營)을 성주청(星主聽) 유지(遺址)에 옮겨 세우고 호남원병(湖南援兵)을 거주케 함. - 성주청유지(星主聽遺址)에 1620년 좌위청[(左衛廊)진무청(鎭撫聽)]과 우위청[(右衛廊)영군청(營軍聽)]을 둠.
○ 정원루(定遠樓)를 세우고 주성(州城)을 보수함

서기 1526, 병술(丙戌), 조선 중종21
○ 목사 이수동(李壽童) 재임시 삼성혈(三姓穴)에 홍문(紅門)과 혈비(穴碑)를 세우고 고ㆍ양ㆍ부(髙ㆍ梁ㆍ夫) 삼성의 후손으로 하여금 매년 춘추제(春秋祭)를 지내게 함. 삼성사(三姓祠)는 1964년 제주도 문화재(文化財) 사적(史蹟) 134호로 지정되었음.
○ 귤류과원을 오방호소[별방(別方), 명월(明月), 수산(水山), 서귀(西歸), 동해(東海)]에 설치하여 병사를 두어 지킴.
○ 주성내(州城內) 홍화각 옆에 저수지를 만들고 우연당(又蓮堂)을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