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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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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조(髙奉朝) 국외독립운동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2:18
조회
41269

1920(庚率).9.11~1963(癸卯).10.8 ~ (국외독립운동)
父 : 丁吉(정길)
출신지 : 제주 城山邑 城山里,
활동지 : 일본 大阪

공은 1934년 제주 성산초등학교(現 동남교)를 졸업한 그 해 일본대판(大豚)에 거주하는 아버지를 찾아 도일하였다. 그 후 1940년 3월 일본대학(日本大學) 전문부 특과 야간부에 재학할 때 매형 김봉각(金奉類)이 경영하는 금성제작소(金域製作所)에서 근무하였다.

『조선청년의 갈 길은 오직 하나 민족해방을 위하여 헌신하는 길 뿐이다』는 김봉각의 주장에 공감하고 강금종(姜金鍾), 한만숙(韓萬淑) 등 동지를 규합, 같은해 5월 흥아연구회(興亞硏索會)를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이어 일본정세의 변화에 따라 조직을 더욱 확대 강화하기 위하여 흥아연구회를 해체하고 한인비밀결사인 계림동지회(鷄林同志會)를 결성, 행동방침을 정하고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중 공은 1941년 2월 25일 동지들과 함께 일본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1942년 11월 18일 일본 대판 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정역1년 6월형에 집행유에 3년을 언도받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