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정(髙錫楨) 조선 말기 문신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2:14
조회
41202
조선 말기 문신. 자는 두운(斗運)이고, 호는 삼락당(三樂堂)이다.
임진왜란 때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싸우다 진주에서 순절하여 전라북도 남원(南原) 정충사(旌忠祠에 배향된 고득뢰(髙得賚)선생이 5대조이다.
고석정은 5대조의 음덕으로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을 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문장(文章)에 힘써 서울과 지방의 과장(科場)에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영조(英祖) 경과(慶科) 정시(庭試)에 입장할 때 말을 함부로 한 것이 단서가 되어 평안북도 삭주(朔州)에 3년간 유배당하였다.
그가 유배살이 하던 3년간의 생활을 일기체 형식으로 쓴 것이 《서천일록(西遷日錄)》이다.
임진왜란 때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싸우다 진주에서 순절하여 전라북도 남원(南原) 정충사(旌忠祠에 배향된 고득뢰(髙得賚)선생이 5대조이다.
고석정은 5대조의 음덕으로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을 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문장(文章)에 힘써 서울과 지방의 과장(科場)에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영조(英祖) 경과(慶科) 정시(庭試)에 입장할 때 말을 함부로 한 것이 단서가 되어 평안북도 삭주(朔州)에 3년간 유배당하였다.
그가 유배살이 하던 3년간의 생활을 일기체 형식으로 쓴 것이 《서천일록(西遷日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