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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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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극명(髙克明) 조선말기 효자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2:14
조회
42137
조선말기 효자 (1769 ~ 1855)

고극명의 자(字)는 명언(明彦),  호(號)는 삼야정(三野亭)으로 본관(本貫)은  영주(瀛州)이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을 잘 하였다.

일찍이 부모가 사는 집에서 "천지봉공(天地奉供)" 네 자를 부모의 방에 써 붙이고 "부모는 나의 천지(天地)이다. 사람이 부모에게 불효하면 천지에게 죄를 받을 것이니 어느 곳에 몸을 용납하리오" 하였다.

낮에는 밭갈이 하고 고기를 잡아 무모에게 봉양하고 밤이면 서당에 가서 밤늦도록 독서를 하였으며, 매사에 경계학 삼가며 두려워할 줄 알아 어긋남이 없었다.

또 풍수설을 연구하여 성인산(聖人山) 밑에 길지(吉地)를 얻어 성인동(聖人洞)-지금의 성안동-이라 이름하고 농경(農耕)과 종수(種樹)에 힘쓰고 정자를 지어 "삼야정(三野亭)"이라 하고 연못을 파고 대(臺)를 쌓아 그 위에 삼강석(三綱石)과 오륜석(五倫石)을 세우고 낙화대(落花臺)와 학소대(鶴巢臺)을 쌓아 시를 지어 뜻을 보였다.

국상을 당할 때마다 초하루와 보름마다 삼베옷을 입고 두건을 써서 향을 피워 하늘에 호소하니 사람들이 충신효자라 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져 1890년(고종27년)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