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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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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룡(髙湛龍) 학생운동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2:24
조회
41085

1915(乙卯). 11. 17~1989(己巳). 12. 6 (학생운동)
호 : 東日(동일)
출신지 : 제주 朝天邑 朝天里,
활동지 :일본 東京
[중시조 31세손, 靈谷公(得宗)의 17제손]

공은 1931년 제주 조천(朝天)공립학교 6학년 때 신년식 참석을 기피한 인물로 지목되었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대판(大阪)에서 고학으로 대판중학교를 졸업하고1942년 동경(東京)중앙대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공은 대학재학 중 김운풍(金雲風), 선기현(申琪鉉), 오호림(吳浴株)등과 1938년부터 4년 동안 20여 차례 모임을 가지며, 동경(東京)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전개 하였다. 이때 이들은 『고문(髙支그룹)』이라는 친목단체를 표방하면서 활동하였으며, 공은 그룹의 지도자로서 주도적인 역활을 하였다.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하던 중 동 조직의 활동이 일본경찰에 발각됨으로써 공은 1942년 5월 피체되어 갖은고문과 악형을 당하였다. 다음해인 1943년 대구지방법원으로 송치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8년간 옥고를 치렀다. 공은 광복 후 교육계에 투신하여 성균관대, 국민대, 제주대등에서 교수를 역임하였고 제4대, 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9년 전남 광주 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였으며 대전국립묘지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공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애족장을수여 하였다.

▒ 상세설명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