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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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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석(髙龍錫) 3.1운동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3:15
조회
41308

1895(乙末). 1. 5~1950(康寅). 8. 20 (3.1운동)
출신지 : 전남 長城郡 北二面,
활동지 : 전남 長城

공은 1919년 4월 3일 전남 장성군 북이면 모헌리(北二面 茅峴里)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공은 이날 오후 신경식(申耕植), 유상설(柳相卨) 등 마을 유지들과 박승화(朴承和)의 집에서 화전회(花煎會)모임을 가졌다.

공은 파리 강화회의에서 약소국가의 독립승인 소식과 전국에서 만세 시위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즉석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일으키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모든 참석자들이 찬성하자 정병모(鄭秉謨)는 대형태극기를 만들고 마을 주민들에게 연락하니 자발적으로 2백여 명의 시위 군중이 모여 들었다.

공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모현리 일대를 시위행진 한 후 해 산하였다. 그러나 독립만세 시위운동 주동자로 공은 왜경에 피체되어 그 해 7월10일 고등법원에서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 후 공은 1922년 장성동지회(長城同志會)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 장성지구 문화부장으로 활동하였다.

다음 해 농민회를 조직하다 왜경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후 1932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1940년 귀국하여 장성독서회(長城讀書會)를 조직하여 독립의식과 민족정기를 고취 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