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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득종(髙得宗)선생이 지은글 홍화각기(弘化閣記)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00-03-18 19:54
조회
4263


제주도에 있는 관아 건물의 건립을 기록한 조선 초기의 판각문.

지정번호 : 제주유형문화재 제15호
지정연도 :  1991년 6월 4일
소장 : 사유
소재지 :  제주 제주시 이도1동 1313
시대 :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가 모두 불탄 뒤 세종 17년(1435)에 최해산(崔海山) 안무사가 홍화각 등 여러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홍화각기』는 바로 그 간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고득종(髙得宗)선생이 지은 글이다.  

홍화각(弘化閣)등 관아(官衙) 건물의 건립 전말을 판각한 기문(記文)이다. 제주목 관아가 모두 불탄 뒤 1435년(세종17)에 최해산(崔海山) 안무사가 홍화각(弘化閣) 등 여러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 홍화각기(弘化閣記)는 바로 그 간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고득종(髙得宗)선생이 지은 글이다.

그 기문(記文)의 일부를 인용해보면, "공(公)(최해산(崔海山))이 정사(政事)가 성취되고 인심이 화하여지자, 관우(館宇)의 허물어진 것을 수축하려고 폐허가 되어버린 절의 재목과 기와를 가져다가 먼저 거처하는 집을 일으키니, 거문고 타는 당(堂)과 욕실·부엌·랑사(廊舍)의 위치가 갖추어졌다. 조금 서편으로 집 한 칸을 세워서 당(堂)을 만들고, 또 그 서쪽에 집 세 칸을 세우고 겹처마로 보충하니, 그 규모가 굉걸하고도 정밀하고 그 제도가 웅장하고도 화려하였다. 그 남쪽에 반랄(半剌)(판관(判官))의 당(堂)을 세우고 그 북쪽에는 나라에 바치는 말의 마구간을 두고 동쪽에는 창고를 두고 서쪽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또 그 남쪽에 문루(門樓)를 지어 아래로는 드나들게 하고 위에는 종과 북을 달았고, 약(藥)창고와 기(旗) 두는 곳이 동서에 서로 대하여 모두 서 있다. 모두 담으로 둘렀으며, 집이 도합 2백 여섯 칸인데, 집들이 서로 연접(連接)하지 않은 것은 화재를 예방한 것이다. 그 경영과 위치와 제작이 정당함을 얻은 것은 모두 공(公)의 지시와 규획(規劃)에서 나왔다"고 하였고, '홍화각(弘化閣)'이라 한 현액(縣額)은 "무릇 임금의 근심을 나눈 자가 날마다 이집에 올라서 편안히 놀지도 말고 방종히 하지도 말아서 맡은 직책을 다하기를 생각하여, 항상 왕화(王化)를 넓히고(홍(弘)), 백성의 사정을 상달(上達)시키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제주 백성들이 무궁하게 복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홍화(弘化)라고 이 집을 이름하지 않으랴"고 하여, 성군(聖君)의 덕을 온누리에 널리 알리고 덕화(德化)로써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글전체의 내용은 제주도의 지형과 역사를 우선 간략히 서술한 뒤에 최해산의 인품과 선치(善治)를 찬양하였고, 다음으로 홍화각의 건립 내력과 홍화각이라 명명(命名)한 이유를 적고 있다. 또 '홍화각(弘化閣)'이란 제액(題額) 세 글자도 고득종(髙得宗)선생 자신이 직접 써서 게시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현재 '홍화각기(弘化閣記)' (263×67.5㎝)와 '홍화각(弘化閣)' (163×65.6㎝) 액자는 모두 고·량·부(髙·梁·夫)  삼성사재단(三姓祠財團)에 소장되어 있다.

[자료출처] 시도유형문화재 제15호(제주) 홍화각기(弘化閣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