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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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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순(髙光洵) 구한말의 의병장.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깃발을 만듬.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6:08
조회
386

1848∼1907. 구한말의 의병장. 초명은 광욱(光旭) 또는 광순(光珣·光詢). 자는 서백(瑞伯), 호는 녹천(鹿川). 전라남도 창평출신. 생부는 정상(鼎相), 양부는 경주(慶柱), 항일투사 기산도(奇山度)는 사위이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각 읍에 격문을 발송하고, 기우만(奇宇萬)과 의병을 모집하여 좌도의병대장에 추대되었다. 나주를 본영으로 의병을 불러모으자 일본군이 나주로 집결하므로 광주(光州)로 옮기고,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북진하던 중 선유사(宣諭使)의 권고로 의병을 해산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된 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의 순창 거의(擧義)소식을 듣고 고제량(髙濟亮)과 순창에 이르렀으나, 최익현은 이미 패전하여 서울로 압송된 뒤였다. 다시 기우만 백낙구(白樂九)와 모사하였으나, 그들도 곧 붙잡혔다.

1907년 1월 24일 저산(猪山)의 제각(祭閣)에서 제량 광훈(光薰) 광채(光彩) 등 족친들과 윤영기(尹永淇) 박기덕(朴基德) 등과 거의하였다.12월말 남원의 양한규(梁漢圭)와 남원 함락을 계획, 남원성을 공격하여 관군과 접전하였으나 양한규의 전사와 남원의진의 붕괴로 퇴진하였다.

1907년 5월에는 능주(綾州), 8월에는 동복(同福)을 습격하였다.

그뒤 지리산 문수암(文殊庵)을 거점으로 활약하던 김동신(金東臣)과 연합작전을 구상, 지리산으로 집결하였다. 그동안 그의 종가는 적의 습격으로 사당만 화를 면하였을 뿐 피해가 컸다.

8월 구례 연곡사(燕谷寺)로 가서 화개동(花開洞)과 문수암 일대를 거점으로 대원들을 머무르게 한 뒤, 군대훈련과 군량을 보충한 뒤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깃발을 만들어 의기를 북돋우었다.

그뒤 지리산을 거점으로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적의 연곡사 복멸작전에 의한 야습을 당하여 9월 부장인 고제량을 비롯, 주요장졸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