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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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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예진(髙禮鎭) 독립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03 14:22
조회
13713




1875.11.24(고종 12)∼1952.10. 2 독립운동가. 자는 계문(季文), 호는 송천(松川). 전라북도 고창출신.

중시조 성주공 말로(末老)의 28세손이고 장흥백(長興伯) 중연(仲연)의 19세손(世孫)이다

공(公)은 족형 고석진(髙石鎭), 고용진(髙龍鎭) 등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 체결되자 선생을 비롯한 마을청년들이 충남 정산(定山)에 모여 창의할 것을 결의하였다.

공(公)은 창의격문을 인근지역에 배포하고 각지에서 모인 의병 수백명과 함께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의병장이 이끄는 면암의진(勉庵義陣)에 가담하였다.

면암(勉菴) 의병장이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강회(講會)를 열었을때 공(公)이 앞장서서 유림인사들을 규합하였으며 이때  고용진(髙龍鎭)이 포수 30여명을 이끌고 참가하여 사기가 올랐다.

그 후 공(公)은 정읍,순창,곡성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순창 구암사(龜岩寺)에서 왜병의 기습공격을 받고 크게 패하여 많은 의병들이 전사하거나 체포되었다.

공(公) 피체된 후 갖은 악형을 당하고 전주(全州)의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그 해 12월 27일 석방되었다.

그 후 공(公)은 1914년 고종황제의 밀명에 의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서기관으로 임명되어 군권회복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세계평화회의에 보내는 파리장서(巳里長書)에 137명 중 한사람으로 서명하기도 하였다. 그 후 후손들이 전북 고창에 도동사(道東祠)를 세워 공(公)과 고석진(髙石鎭) 의병장을 봉안하였다.

공(公)은 송천집(松川集) 4권을 저술하였다.

정부에서는 공(公)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덧붙이는글
*장흥백(長興伯) 중연(仲연)선조님의 휘자(諱字)중 연자는 나무목(木)+대자리연(筵) 이나 아래한글에서는 나오지 않아 한글로 대체함
*휘(諱) : 돌아가신 높은 어른의 생전의 이름자.

▒ 상세설명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