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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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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안(髙尙顔) 조선 중기의 학자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6:17
조회
59
1553(명종 8)∼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사물(思勿), 호는 태촌(泰村). 천우(天佑)의 아들이다.

1573년(선조 6)진사가 되고, 1576년에 문과에 올라 함창현감 풍기군수 등을 지냈다.

40세가 되던 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침입하자, 향리인 상주 함창에서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큰 공을 세웠다.

49세 이후 지례현감 함양군수를 지냈고, 이덕형(李德馨) 이순신(李舜臣) 등과의 서사기록(書事記錄)도 남긴 바 있다.

그뒤 울산판관을 지낸 후,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생활을 하였다.

문집으로 1898년에 간행한 목판본 6권 3책이 전하는데, 그 가운데 행장(行狀)에 보면 농사에 밝고 문장이 능하며, 농군을 가르치고 농사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학계에서는 현전하는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를 그의 소작이라고도 본다. 이는 문집인 《태촌집》에 〈농가월령〉이라는 기록을 볼 수 있음과 행장에 적힌 치사 후의 농사와 관련된 생활을 볼 때, 〈농가월령가〉는 고상안과 관련이 깊었으리라는 짐작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밖에 그의 문집에는 총화(叢話) 여화(餘話)에 해당되는〈효빈잡기〉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유성룡(柳成龍)에게 올린 팔책(八策)과 유합(類合), 《해동운부군옥 海東韻府群玉》에 대한 기록과 풍속 전설에 관한 기록 등이 전하여 일반문집에 비해 이색적이다. 이같은 여러가지 점을 종합하여볼 때〈농가월령가〉에 나타난 계절감각, 영농내용 등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