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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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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재(髙世在)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로 이름을 빛냄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6:32
조회
96
고세재(이부상서공) - 6세

이부상서공 휘 세재 중시조 6세(吏部尙書公   諱 世在 中始祖六世)

고려중엽의 문인, 중시조 星主公(성주공) 諱(휘) 末老(말로)의 육세손.

성주 谿林公(계림공) 휘 適(적)의 둘째 아들이다. 호는 用源(용원). 神宗(신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吏部尙書(이부상서), 門下侍中平章事(문하시중평장사)로 이름을 빛내었다.

(參考文獻(참고문헌) : 高麗史(고려사), 東國史略(동국사략))

▷ 이부(吏部)

이부에 속해 문관의 인사와 공훈에 관한 사무를 맡아 보았다. 982년(성종 1) 어사6관(御史六官)을 두면서 선관(選官)이라 하였다가 995년 상서이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문종 때는 관원으로 판사 1명, 상서 1명, 지부사 1명, 시랑 1명, 낭중 1명, 원외랑 1명을 두었고 이속으로는 주사 2명, 영사(令史) 2명, 서령사 2명, 기관(記官) 6명을 두었다. 하부조직으로 관리들의 공과 잘못, 출근과 결근, 휴가 등을 조사하는 고공사(考功司)를 두었다.

1275년(충렬왕 1) 원나라의 간섭으로 관제를 개편할 때 예조와 함께 전리사가 되었는데, 이 때 관원의 명칭도 상서를 판서, 시랑을 총랑, 낭중을 정랑, 원외랑을 좌랑으로 바꾸었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예부를 분리하고 전조(銓曹)라고 한 뒤 상서·시랑·낭중·원외랑 관직을 다시 두었으며 판서와 지사는 폐지하였다.

충선왕이 물러나자 다시 전리사로 바뀌었으나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면서 군부사(軍簿司)와 합하여 선부(選部)가 되었다. 관원들도 바뀌었는데, 전서·의랑·직랑·산랑을 두고 주부(注簿) 2명을 새로 두었다. 그 뒤 다시 전리사라고 했다가 1356년(공민왕 5) 이부가 되었고 1369년 선부, 1372년 전리사를 되풀이한 끝에 1389년(공양왕 1) 이조가 되어 조선에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