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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墓)냐? 단(壇)이냐?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02-12-27 00:03
조회
5103
묘 모르는 사람 없다. 다만 ‘단’은 묘와 다르다. 유명한 단은 전주시 덕진동의 ‘조경단(肇慶壇)’이다.

이 지역에 전주이씨 시조 이한(李翰) 묘가 있는데 봉분(封墳)을 못찾아 ‘단(壇)’을 세웠고, 4월 10일이면 전국에서 수천인이 모여 제사한다. 묘를 못찾았다 해서 부끄러울 게 없고 남들도 욕하지 않는다. 천여 년 전의 일이라 잊을 수 있다.

단을 만들어 제사하는 씨족은 많다. 숭조사상이 특별한 우리나라에서는 ‘묘’를 잊었을 때 단을 세웠으니 독특한 문화권이다. 옛 고산현(高山縣)에서 오래된 씨족은 제주고씨, 기계유씨, 교동인씨인데 그중 고인충(髙仁忠/부인 평양조씨)무덤이 가장 오래 되었고, 고산면 서봉리 소농골 노송 곁에 있다.

둥글게 돌을 둘렀으며 재실은 효경재(孝敬齋)이다. 19세손 수천(洙千)씨가 종중을 지켜 가는데 이 집에는 ‘분무 원종공신 녹권(奮武原從功臣錄券)’이 있다.

2007년 봄, 12월 대통령 선거 전 7년 봄 이야기이다. 고 건(髙 建)씨가 당선되면 전국이 떠들썩할 무덤이 될 것이란 소문이 있었다. 그는 바로 이곳에 묻힌 고인충(髙仁忠)의 후손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래된 우람한 문인석(文人石)이 있고 크기와 조각이 완주 북동부에서 최고품인데 비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래 글자 ‘…지단(之壇)’에서 ‘壇’을 지우고 ‘묘(墓)’로 고쳐 새겼다.

시신을 확인하고 그랬다면 문제 아니지만 그게 아니라면 실수이다. 그의 아버지 박열(朴說)은 중종 때 우찬성을 한 문신으로 조선왕조실록에 300여회 나온다. “이런 분의 아들이 낙향하여 살았는데 묘를 모르다니…!” 애석함과 부끄러움을 덜어보자는 몇몇 종인의 뚝심에 따라 고쳤을 가능성이 크다.

존경의 대상은 ‘묘’가 아니라 사람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왕가에서도 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승철=完州文化院/연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