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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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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흠(髙景欽)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8:01
조회
440

(1910년~미상)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가명은 김민우(金民友)·차석동(車石東)·남해명(南海明)·김영두(金永斗)이다. 아버지는 한학자 고성집(髙性輯)이다. 항일운동가 고순흠(髙順欽)과는 가까운 인척 사이이다.

서울에 있는 정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923년 4월 경성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25년 제주의 첫 사상 단체인 신인회(新人會)를 창립하였고, 1927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고학하였다.

1927년 3월 도쿄에서 홍효민(洪曉民)·이북만(李北滿) 등과 함께 제3전선사(第三戰線社)를 설립하고 『제3전선』을 발간하였고, 1927년 5월에 재동경조선청년동맹에 가입하여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7년 9월 제3전선사 간부들과 함께 국내로 들어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개편에 참여하고 사회주의 문예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10월 신간회 도쿄지부에 가입하였는데, 이 무렵 일본 경찰의 지명 수배를 피하여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다시 일본으로 가서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재건에 참여하였고,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하여 결성된 무산자사에도 참여하였다. 1931년 8월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으로 체포되었고, 1933년 5월 경성지방법원 법정에서 사상 전향을 선언하였다. 1938년 7월 옥중에서 사상 전향자들이 조직한 친일 단체인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에 결성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출옥 후 1940년 3월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의 편집부원이 되었고, 1944년에는 여운형이 조직한 비밀 결사인 건국동맹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16일 조선공산당(장안파)의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1945년 9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서기국장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 조선인민당 당수 여운형의 특사로 평양에 가서 김일성(金日成)과 회담하였고, 1946년 5월 『독립신보』 논설위원 겸 주필이 되었고, 1947년 5월 근로인민당 결성에 참여하였다.

1940년대 전반 이래 여운형과 함께 활동하던 고경흠은 1947년 7월 19일 여운형의 암살 당시 동승하고 있었고, 여운형 암살 후 월북하였다. 북한에서 1948년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고 1956년 4월 제3차 조선노동당 대회 때에 중앙후보위원에 올랐으나 1963년에 숙청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