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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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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희(髙秉禧)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8:04
조회
171

1900년(고종 37)~ 1964년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8년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입학하였다. 세이소쿠영어학교 재학 중 조선 유학생들의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인 형설회(螢雪會)와 박렬(朴烈)이 조직한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하였다.

흑도회가 박렬이 주도하는 흑우회(黑友會)와 김약수(金若水)가 주도하는 북성회(北星會) 양파로 분열되자, 고병희는 박렬이 주도하는 흑우회에 참여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잡화상을 경영하면서 제주도에서의 무정부주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었다.

1927년 3월경 조대수(趙大洙)·고영희(髙永禧)·강기찬(康箕贊)·김형수(金炯洙)·임상국(任祥國)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연구에 필요한 문고(文庫)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고병희는 월 30원씩 갹출하여 사상 서적을 구입하여 돌려 읽을 것을 제창하였다. 이들은 매달 1회 회합을 통해 공동으로 연구하였고, 동지를 규합하여 조직을 확대해 가고 있었다.

1928년 4월경 동지들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여 공동 구입한 서적을 돌려 읽으며 매월 30원씩 모았다. 1929년 5월에는 우의돈목(友誼敦睦)·경조상문(慶弔相門)·생활 향상 등을 취지로 하는 우리계(宇利契)를 조직하여 매월 3원씩 조합비를 3년간 거두기로 하였다.

우리계는 1929년 9월 각 동리(洞里)에 야학을 개설하여 항일 의식과 무정부주의 사상을 고취시켰고, 계원 중에는 도청·은행·금융조합·학교 등의 공무원 및 실업가와 제주도 내의 유지들이 망라되었다. 그러나 조직이 발각되어 1931년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고병희와 조대수는 징역 3년, 고영희·강기찬·김형수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