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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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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간(髙秉幹) 의사·교육자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6:47
조회
154

1900∼1964. 의사·교육자. 호는 영서(瀛西). 평안북도 의주출생이다.
의주 신영소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선천 신성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1년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난 뒤 복교하여 졸업하였다.

1925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모교에서 외과수련을 받고, 1927년 함흥 제혜병원(濟惠病院)외과과장으로 부임하였으며, 함흥제일교회 장로로도 재직하였다.

1934년 일본 경도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에서 〈고환(睾丸)내 항체발생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는 한편, 모교인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외과교수가 되었다.

1945년 10월 대구의과대학(지금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학장으로 임명되었고, 1947년 윤일선(尹日善)과 같이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국제암학회에 참석하였으며, 1949년 대한적십자사 경상북도지사장에 선임되었다.

한편, 마산국립결핵요양원과 철도요양원 촉탁을 겸하여 폐절제수술과 흉곽성형수술을 시행하였다.
1951년 문교부차관에 임명되었으며, 1952년 경북대학교 총장 및 의과대학 학장에 임명되었다.
1953년 대한외과학회 회장에 피선되었으며, 같은해 미국무성 초청으로 6개월간 미국의 대학 및 의료제도를 시찰하였다.

1954년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미국 메노나이트재단 이사장에 추대되었고, 대한결핵협회 회장에 피선되었으며, 연세대학교 재단이사와 계명대학교 재단이사를 역임하였다.
1957년 경북대학교 총장에 중임되었으나 4·19 이후 사임하고 연세대학교 총장에 취임하였다.

1961년 세브란스병원 원장, 1964년 죽을 때는 숭실대학 학장으로 있었다.
성격이 강직하고 청렴결백하였으며, 소신을 굽히지 않으므로 학생들로부터 ‘고불통(高不通)’이라는 별명까지 받았다.

광복 후 대구폭동의 중심이었던 의과대학을 정돈하여 종합대학교인 경북대학교로 발전시켜 초대총장을 지내는 등, 분망한 중에도 흉곽외과의 일을 잊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고 꾸준하였으며,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 교육가이기도 하였다.

1954년 결핵퇴치사업 공로상을 받았고, 1959년 경상북도 향토문화상을 받았다. 경북대학교 교정에 그의 흉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