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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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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륜(髙載崙)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8:07
조회
360

1898년(고종 34)~1980년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장환이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의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1919년 3월 16일 제주에 도착하였다. 조천 지역 유지인 김시범(金時範)을 만나 서울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김시범은 거사를 결심하였다. 김시범은 김시은(金時殷)·김장환과 함께 3월 17일부터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거사를 발의하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3월 19일까지 14명의 동지를 모았는데, 고재륜을 비롯하여 김시범·김시은·김형배(金瀅培)·김년배(金年培)·황진식(黃鎭式)·김용찬(金容燦)·백응선(白膺善)·김장환·박두규(朴斗圭)·이문천(李文千)·김희수(金熙洙)·김경희(金慶熙)·김필원(金弼遠) 등이었다. 제주 유림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던 김시우(金時宇)의 제삿날인 3월 21일이 거사일로 잡혔다.

1919년 3월 21일 1차 시위가 벌어졌다. 500여 명에 이르는 시위대는 경찰관주재소 서쪽으로부터 미밋동산까지 행진하였고, 김시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데서 절정에 이르렀다. 시위대는 조천 비석거리를 돌아 제주성 안으로 향하던 중 신촌에 이르러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당시 조천의 경찰관주재소의 경찰은 5명에 불과해서 시위를 막을 수가 없었다. 간다[神田] 순사부장이 제주경찰서에 병력 증원을 요구하여 30여 명의 순사들이 도착해 신촌에서 대치하게 되었던 것이다.

1차 시위에서는 경찰과의 충돌로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13명이 연행되었다. 14인 동지 중 이날 연행자는 고재륜을 비롯한 김시범·김시은 등 9명이었다. 고재륜은 1919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서귀포로 이사하여 남제주주조주식회사를 경영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9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