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忠烈公) 동상 좌대에 새긴 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04-05-11 00:12
조회
5243
충렬공 제봉 고경명 선생 공적
고경명 선생은 1533년 학문과 효도의 명문에서 태어나 26세에 장원등과하신 뒤 조정요직을 거쳐 울산,영암,서산,한산,순창군수와 동래부사를 지내셨다.
선생의 나이60세 때인1592년 임진년에 왜군이 이 나라를 침범해 왔을 때 이에 항거 국난을 극복하자는 공의 마상격문에 감동하여 참가한 7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국 각지에서 왜적을 격파하시다 1592년7월10일 마침내 금산성 전투에서 차남 의렬공 인후,청계 안영,월파 유팽로 등과 장엄하게 전몰, 순절 하셨다.
임진, 정유7년 전란 중 공의 일가는 두 아들을 비롯 두 형제,딸과 사위, 그리고 노비의 신분으로 선생과 함께 순절한 봉이, 귀인 등 일가족 9명이 순절하거나 자결하여 그 충의와 절개는 우리 민족 사상 전무후무하기에 온 겨레가 우러러 받들고 있다.
서기 2008년 12월 22일
재단법인 충렬공 제봉 고경명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전 전라남도지사 장 형 태 (글)
▒ 상세설명
*좌대(座臺) : 기물을 받쳐서 얹어 놓는 대. ‘깔판’, ‘받침대’로 순화
고경명 선생은 1533년 학문과 효도의 명문에서 태어나 26세에 장원등과하신 뒤 조정요직을 거쳐 울산,영암,서산,한산,순창군수와 동래부사를 지내셨다.
선생의 나이60세 때인1592년 임진년에 왜군이 이 나라를 침범해 왔을 때 이에 항거 국난을 극복하자는 공의 마상격문에 감동하여 참가한 7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국 각지에서 왜적을 격파하시다 1592년7월10일 마침내 금산성 전투에서 차남 의렬공 인후,청계 안영,월파 유팽로 등과 장엄하게 전몰, 순절 하셨다.
임진, 정유7년 전란 중 공의 일가는 두 아들을 비롯 두 형제,딸과 사위, 그리고 노비의 신분으로 선생과 함께 순절한 봉이, 귀인 등 일가족 9명이 순절하거나 자결하여 그 충의와 절개는 우리 민족 사상 전무후무하기에 온 겨레가 우러러 받들고 있다.
서기 2008년 12월 22일
재단법인 충렬공 제봉 고경명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전 전라남도지사 장 형 태 (글)
▒ 상세설명
*좌대(座臺) : 기물을 받쳐서 얹어 놓는 대. ‘깔판’, ‘받침대’로 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