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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문화의 형성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11-04-17 00:44
조회
3106


  [용담동고분출토 합구식옹관]


"탐라(耽羅)"라는 명칭은 6세기에 처음 문헌에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그 때 비로소 쓰기 시작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탐라라는 이름은 처음 외부 사람이 부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체성(正體性) 확립을 목적으로 스스로가 부른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떻든 간에 그것은 제주도 주변의 다른 지역집단과 구분되는 해상도서집단으로서 나름대로 결속력 있는 일정한 정치제가 들어섰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에 주호(州胡)라는 명칭이 나오므로, 탐라는 주호 이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제주에서 탐라를 국(國)의 성장과 관련지어 접근한다고 하면 국의 우두머리급에 해당되는 인물의 등장으로 탐라의 시작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고학 자료로서는 제주시 용담동 철기 부장 적석묘역(積石墓域) 목곽묘가 있다.

그 시기는 대체로 일정한 양식으로 완성된 곽지리식토기(郭支里式土器)가 제주도 전역에 확산되는 때인 기원 2세기대를 전후한 시점이라 보여진다.

제주도에서의 국의 형성은 결국 도내 단위집단의 결속력 강화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이는 결국 일정한 양식의 토기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섬 지역 인에서 대량 생산 소비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곽지리식토기를 내는 유적의 분포로 보면 제주도 전역에 걸쳐 있어, 동 단계에 마을과 인구가 급증한 것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다량의 철제유물을 부장한 용담동 적석묘역의 목곽묘와 정형화된 곽지리식토기의 등장은 탐라의 성장과 관련하여 중요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 국립제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