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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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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일(髙昌一) 독립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8:49
조회
67

1892. 4. 6~1950. 납북.  함북 경원(慶源) 출신.

일찍이 노령(露領)에 있을 때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달냐워스톡대학을 졸업하고 징병으로 인해 러시아제국 장교(將校)로 종군하였다고 한다.

1917년 12월 재로(在露) 한족단체들이 전로한족회중앙총회(全露韓族會中央總會)로 통합되자 이에 참가하여 활동하였으며, 1919년 1월 전로한족회 중앙총회가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로 변경되면서 해외 한민족의 대표최고기구를 표방하자 또한 이에 참여・활동하였다. 그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대한국민의회 대표로 윤해(尹海)와 함께 선발되어 1919년 9월 파리에 도착하였으나, 평화회의가 폐회된 까닭에 〈한국의 독립과 평화〉, 〈자유 한국〉 등을 불어로 발표하였다.

1920년 5월 상해(上海)로 돌아온 후 다시 러시아로 들어가 6월경 문창범(文昌範)을 중심으로 중국 북경(北京)으로부터 온 박용만(朴容萬)・유동열(柳東說) 등과 함께 이르크츠크 등지에서 독립운동방안을 협의하고 유동열・김하석(金夏錫)・최고려(崔高麗)・안병찬(安秉瓚) 등과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 이른바 이르크츠크파공산당)을 조직하였다. 1923년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가 개최되어 창조론(創造論)과 개조론(改造論) 논쟁이 일어나자 창조파에 참여하였다.

그후 1933년 8월 조선공산당 만주 길림성(吉林省) 화룡현위원회(和龍縣委員會) 조직부장(組織部長)으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함흥(咸興)・원산(元山) 등지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하얼빈(哈爾濱)에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회(南朝鮮過渡立法議會) 의원(議員)을 역임하고, 1948년 초대 외무부 차관(外務部 次官), 1949년 외무부장관서리(外務部長官署理)가 되어 한국의 UN 가입신청을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9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