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충공파(文忠公派) 파조(派祖), 고경(髙慶) 중시조11세손(世孫)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6 19:39
조회
45952
고경(髙慶) 중시조11세손(世孫) 문충공파(文忠公派) 파조(派祖)
1276(충렬왕 2)~1342(충혜왕 3). 중시조(中始祖) 성주공(星主公) 말로(末老)의 11세손(世孫) 고려말 문신(門下侍中).
호는 휴옹(休翁) 시호는 문충(文忠) 또는 문영(文英), 수봉 옥성군(玉城君), 쌍명당(雙明堂) 정의 손자이며 이부상서(吏部上書) 백연의 아들로 다섯 살에 시부(詩賦)를 지었고 열두살에 논어(論語)를 외우니 당시에 옥산(玉山)의 신동이라 하였다.
공은 1292년(충렬왕 18년) 16세에 친명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1297년(충렬왕 23년) 여름에 문하성사(門下省事), 1299년(충렬왕 25) 강원감사(江原監司) 다음해 가을에는 이부상서(吏部上書)를 역임하였다.
1304년(충렬왕 30년) 가을에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 겸 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였고 1309년(충직왕 1년) 익대원훈(翊戴原勳)이 되었다. 나라에서는 공을 제양백(濟陽伯)으로 봉하였다가 원(元 : 몽고)이 탐라에 목마장(牧馬場)을 두게 되니 거주하는 고을 이름을 따라 옥성군(玉城君)으로 봉하였다.
목은(牧隱) 이 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 재(吉再)등 제현들이 공을 스승의 예로 존경하고 충효(忠孝)가 동방(東方)의 으뜸이 된다 하였다.
포은(圃隱)은 시에 선생(文忠公)을 만날 때마다 배움을 얻었다.라고 하였고 신독재(愼獨齋)는 그의 시에 구세청풍백세사(九世淸風百世師)라 하여 옥구 한림동에 세거하며 9대 한림을 배출하였음을 기리고 학덕을 추모하였다.
공은 1320년(충숙왕 7년) 벼슬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1342년(충혜왕 3년) 향년67세로 별세하니 나라에서 시호를 문충(文忠)이라 내리고 후히 예장(禮葬)케 하였다.
이로써 공은 문충공파(文忠公派)의 파조가 되며 공의 후손들이 전북,경기,강원지방과 서울등지에 많이 살고 있다. 염의원(廉義院 전북 옥구군 옥산면)과 만화서원(萬化書院 전북 고창군 신림면)에서 공을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염의원(廉義院)은 1685년 후손들이 건립한 서원(書院)으로 1868년(고종 5년) 금원령(禁院令)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20년에 복설하였다.
▒ 상세설명
①주벽(主壁) : 사당(祠堂)이나 사원(祠院)에 모신 여러 위패(位牌) 중(中)에서 주장(主張)이되는 위패(位牌)
1276(충렬왕 2)~1342(충혜왕 3). 중시조(中始祖) 성주공(星主公) 말로(末老)의 11세손(世孫) 고려말 문신(門下侍中).
호는 휴옹(休翁) 시호는 문충(文忠) 또는 문영(文英), 수봉 옥성군(玉城君), 쌍명당(雙明堂) 정의 손자이며 이부상서(吏部上書) 백연의 아들로 다섯 살에 시부(詩賦)를 지었고 열두살에 논어(論語)를 외우니 당시에 옥산(玉山)의 신동이라 하였다.
공은 1292년(충렬왕 18년) 16세에 친명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1297년(충렬왕 23년) 여름에 문하성사(門下省事), 1299년(충렬왕 25) 강원감사(江原監司) 다음해 가을에는 이부상서(吏部上書)를 역임하였다.
1304년(충렬왕 30년) 가을에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 겸 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였고 1309년(충직왕 1년) 익대원훈(翊戴原勳)이 되었다. 나라에서는 공을 제양백(濟陽伯)으로 봉하였다가 원(元 : 몽고)이 탐라에 목마장(牧馬場)을 두게 되니 거주하는 고을 이름을 따라 옥성군(玉城君)으로 봉하였다.
목은(牧隱) 이 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 재(吉再)등 제현들이 공을 스승의 예로 존경하고 충효(忠孝)가 동방(東方)의 으뜸이 된다 하였다.
포은(圃隱)은 시에 선생(文忠公)을 만날 때마다 배움을 얻었다.라고 하였고 신독재(愼獨齋)는 그의 시에 구세청풍백세사(九世淸風百世師)라 하여 옥구 한림동에 세거하며 9대 한림을 배출하였음을 기리고 학덕을 추모하였다.
공은 1320년(충숙왕 7년) 벼슬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1342년(충혜왕 3년) 향년67세로 별세하니 나라에서 시호를 문충(文忠)이라 내리고 후히 예장(禮葬)케 하였다.
이로써 공은 문충공파(文忠公派)의 파조가 되며 공의 후손들이 전북,경기,강원지방과 서울등지에 많이 살고 있다. 염의원(廉義院 전북 옥구군 옥산면)과 만화서원(萬化書院 전북 고창군 신림면)에서 공을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염의원(廉義院)은 1685년 후손들이 건립한 서원(書院)으로 1868년(고종 5년) 금원령(禁院令)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20년에 복설하였다.
▒ 상세설명
①주벽(主壁) : 사당(祠堂)이나 사원(祠院)에 모신 여러 위패(位牌) 중(中)에서 주장(主張)이되는 위패(位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