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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白雲) 고시완(髙時浣)선생의 도술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0-01-23 14:33
조회
41428

도천동의 서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백운암 서재는 옛날 고시완(髙時浣)선생이 평생을 백수로 계시며 학동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세상명리를 탐하지 않고 가난한 동리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며 이 고장의 유풍을 크게 일으켰을 뿐 아니라, 흰 구름을 벗삼은 고고한 삶으로 일관했기에 세상사람들은 그를 백운(白雲)선생이라 불렀다.

학문과 시문은 물론 주역까지 통달하였기에 도술을 부리기도 했다는 전설같은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당시 포악하기로 소문난 어느 통제사가 하루는 기생들을 데리고 용화산(龍華山) 기슭에서 봄 놀이를 하다가 거나하게 취하여 영문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발소리와 더불어 거창한 행렬이 판데목에 이어지고 있었다.
서재 앞뜰의 연못을 통해 이 광경을 본 백운선생은 즉석에서 부적을 써서 물위에 던지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행렬의 말발굽이 갑자기 꼼짝 않고 땅에 달라붙어 술 취한 채 거드름 피우던 통제사는 느닷없이 말에서 굴러 곤두박질하고 마는 것이었다.

거창한 사또행차를 보기 위해 길거리에 수없이 늘어선 백성들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한 것이다.
망신을 당한 터에 코까지 깨어져 심통이 사나워진 통제사는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며 곁에 선 이방을 다그치니, “이는 필시 백운선생이 도술을 부린 것이 분명하며, 아마도 사또어른의 자중을 권고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통제사는 이곳 통영 땅에 고명한 백운선생이 계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개과천선하여 더이상 향토민들에게 행패를 부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조선시대의 옛 통영에서는 매년 봄 ·가을 2회에 걸쳐 군점과 수조가 행해졌다
삼도수군의 수많은 장졸들은 물론 무려 수백척의 전선이 이곳 통영에 총 집결하여 통제사가 직접 군사를 점검하고, 강구안 앞 바다에서 학익진을 펴는 등 해상훈련을 할 때면 대포소리가 하늘을 진동하고 거북배를 비롯한 대소 전선들이 오색찬란한 깃발을 나부끼며 항진하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이를 구경하기 위해 통영 향토민들은 물론 인근의 고성, 거제 그리고 멀리는 진주, 산청, 남해 등지에서 까지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통영 해안은 발 디딜 틈 없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때가 되면 어린 학동들 또한 군점 구경을 하고파 안달이 나기 마련이었기에, 백운선생은 서당 앞뜰에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는 작은 연못의 수면에 마치 오늘날의 텔레비전 생중계를 방영하듯 즉석에서 그 광경을 환히 내 비춰 보여 주었다고 한다.

- 자료출처 : 인터넷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