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又玄) 고유섭(髙裕燮) 동상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10-18 15:39
조회
44913
우현(又玄) 고유섭(髙裕燮) 1905년∼1944년
문 의 처 : 인천시립박물관
전화번호 : 032-440-6750~1
주 소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525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자. 인천의 용동에서 태어나 인천 공립 보통학교(지금 창영 초등학교)를 걸쳐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경성 제국 대학 법학부 철학과에 들어갔다. 주위에선 하루빨리 고등관이 되기를 원하였지만, 미학과 미술사로 전공을 바꾸어 경성 제국 대학이 서울 대학교로 개편되기까지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단 한 사람의 한국 사람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화재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던 때라 일본 도굴꾼이 일본으로 가지고 나가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개성 박물관이 문을 열자, 1933년 초대 박물관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리고는 고대 미술과 고고학을 깊이 파고들어가 문화재를 조사하고 연구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문화재를 지킬 수 있을 방법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불어 넣고자 애썼다.
생각 끝에 우리 문화재의 고귀함을 올바로 알리는 길이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는 길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글을 계속해서 신문과 잡지에 실었다. 이로써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불모지에 홀로 뛰어들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고유섭은 업적을 기려 인천 시립 박물관 앞에 비와 동상을 세우고는 다음과 같이 비문에 새겨 놓았다.
"우리의 미술은 민예적인 것이매 신앙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 자료출처 : 인천광역시 -
문 의 처 : 인천시립박물관
전화번호 : 032-440-6750~1
주 소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525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자. 인천의 용동에서 태어나 인천 공립 보통학교(지금 창영 초등학교)를 걸쳐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경성 제국 대학 법학부 철학과에 들어갔다. 주위에선 하루빨리 고등관이 되기를 원하였지만, 미학과 미술사로 전공을 바꾸어 경성 제국 대학이 서울 대학교로 개편되기까지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단 한 사람의 한국 사람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화재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던 때라 일본 도굴꾼이 일본으로 가지고 나가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개성 박물관이 문을 열자, 1933년 초대 박물관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리고는 고대 미술과 고고학을 깊이 파고들어가 문화재를 조사하고 연구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문화재를 지킬 수 있을 방법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불어 넣고자 애썼다.
생각 끝에 우리 문화재의 고귀함을 올바로 알리는 길이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는 길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글을 계속해서 신문과 잡지에 실었다. 이로써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불모지에 홀로 뛰어들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고유섭은 업적을 기려 인천 시립 박물관 앞에 비와 동상을 세우고는 다음과 같이 비문에 새겨 놓았다.
"우리의 미술은 민예적인 것이매 신앙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 자료출처 : 인천광역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