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응성(髙應星) 중종(中宗) 8년(151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60위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6 10:35
조회
41957
자 : 백언(伯彦)
거주지 : 청도(淸道)
[관련정보]
[생원진사시]중종(中宗) 8년(151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생원 1등(一等) 3위
[이력사항]
전력 : 유학(幼學)
양시 : 양시(兩試)
[가족사항]
[부]
성명 : 고익겸(髙益謙)
관직 : 봉화훈도(奉化訓導)
품계 : 승사랑(承仕郞)
▒ 상세설명
*유학(幼學): 고려·조선 시대에 벼슬하지 않은 유생(儒生)을 이르던 말.
*훈도(訓導): ① 조선시대 정구품(正九品) 경관직(京官職)이다. 해당 관서는 다음과 같다.
호조(戶曹)에 딸린 산학청(算學廳)의 산학훈도(算學訓導) 1원, 형조(刑曹)에 딸린 율학청(律學廳)의 율학훈도(律學訓導) 1원, 관상감(觀象監)에 두었던 천문학훈도(天文學訓導)·지리학훈도(地理學訓導)·명과학훈도(命課學訓導) 각 1원, 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의 의학훈도(醫學訓導) 각 1원, 사역원(司譯院)의 한학훈도(漢學訓導) 4원과 몽학훈도(蒙學訓導)·왜학훈도(倭學訓導)·청학훈도(淸學訓導) 각 2원, 사학훈도(四學訓導)는 중학(中學)·동학(東學)·남학(南學)·서학(西學)에 각 1원으로 성균관(成均館)의 참하(參下)로 단부(單付)하여 30개월에 출륙(出六)하였다.
② 조선시대 동반 종구품(從九品) 외관직(外官職)으로서 지방 향교에서 교육을 맡아 보았다.
훈도는 경기도(京畿道)에 26원, 충청도(忠淸道)에 50원, 경상도(慶尙道)에 55원[부산포(釜山浦)·제포(薺浦)의 왜학훈도 2명 포함], 전라도(全羅道)에 49원, 강원도(江原道)에 19원, 황해도(黃海道)에 18원[황주(黃州)의 역학훈도(譯學訓導) 1명 포함], 영안도(永安道: 咸鏡道)에 9원, 평안도(平安道)에 31원[평양(平壤)·의주(義州)의 역학훈도 2명 포함]을 두었다.
지방의 훈도는 수령처럼 근무일수 900일이 되면 전임되었다. 훈도 가운데 뛰어난 사람은 서울의 경우 한성부에서, 지방의 경우 관찰사가 계문하여 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훈도들이 교습활동에 태만하자, 1485년(성종 16)에는 감사와 수령들로 하여금 훈도들을 감독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승사랑(承仕郞): 조선시대 종팔품(從八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거주지 : 청도(淸道)
[관련정보]
[생원진사시]중종(中宗) 8년(151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생원 1등(一等) 3위
[이력사항]
전력 : 유학(幼學)
양시 : 양시(兩試)
[가족사항]
[부]
성명 : 고익겸(髙益謙)
관직 : 봉화훈도(奉化訓導)
품계 : 승사랑(承仕郞)
▒ 상세설명
*유학(幼學): 고려·조선 시대에 벼슬하지 않은 유생(儒生)을 이르던 말.
*훈도(訓導): ① 조선시대 정구품(正九品) 경관직(京官職)이다. 해당 관서는 다음과 같다.
호조(戶曹)에 딸린 산학청(算學廳)의 산학훈도(算學訓導) 1원, 형조(刑曹)에 딸린 율학청(律學廳)의 율학훈도(律學訓導) 1원, 관상감(觀象監)에 두었던 천문학훈도(天文學訓導)·지리학훈도(地理學訓導)·명과학훈도(命課學訓導) 각 1원, 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의 의학훈도(醫學訓導) 각 1원, 사역원(司譯院)의 한학훈도(漢學訓導) 4원과 몽학훈도(蒙學訓導)·왜학훈도(倭學訓導)·청학훈도(淸學訓導) 각 2원, 사학훈도(四學訓導)는 중학(中學)·동학(東學)·남학(南學)·서학(西學)에 각 1원으로 성균관(成均館)의 참하(參下)로 단부(單付)하여 30개월에 출륙(出六)하였다.
② 조선시대 동반 종구품(從九品) 외관직(外官職)으로서 지방 향교에서 교육을 맡아 보았다.
훈도는 경기도(京畿道)에 26원, 충청도(忠淸道)에 50원, 경상도(慶尙道)에 55원[부산포(釜山浦)·제포(薺浦)의 왜학훈도 2명 포함], 전라도(全羅道)에 49원, 강원도(江原道)에 19원, 황해도(黃海道)에 18원[황주(黃州)의 역학훈도(譯學訓導) 1명 포함], 영안도(永安道: 咸鏡道)에 9원, 평안도(平安道)에 31원[평양(平壤)·의주(義州)의 역학훈도 2명 포함]을 두었다.
지방의 훈도는 수령처럼 근무일수 900일이 되면 전임되었다. 훈도 가운데 뛰어난 사람은 서울의 경우 한성부에서, 지방의 경우 관찰사가 계문하여 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훈도들이 교습활동에 태만하자, 1485년(성종 16)에는 감사와 수령들로 하여금 훈도들을 감독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승사랑(承仕郞): 조선시대 종팔품(從八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