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근(髙奉根) 국내독립운동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3:11
조회
42136
1896(丙申). 2. 14~1961(辛丑). 11. 23 (국내독립운동)
출신지 : 서울 후암동
활동지 : 서울
공은 1922년 11월 중순 경 재등실(齋藤實) 조선 총독 암살과 일제 관공서 파괴를 목적으로 서울에 온 처남 김상옥(金相玉)을 삼판통(三板通 : 후암동) 자신의 집에 유숙하게 하며 신변보호 및 정보제공 등을 하였다.
1923년 1월 12일 김상옥(金相玉)이 종로경찰서를 폭파한 후 공의 집에 피신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왜경 10여명이 집을 포위하였다. 이때 김상옥이 뛰쳐나가며 총격전을 벌이는 사이 공은 왜경 5~6명과 격투를 벌이며 처남(김상옥)의 탈출을 성공시켰으나 자신은 중상을 입었다.
그 후 1923년 1월 23일 김상옥이 서울 효재동에서 왜경의 총탄에 맞아 순국한 뒤 계속되는 관련자 검거에서 공은 김우진등 12명과 함께 피체(체포)되어 갖은 악형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증거불충분으로 3월16일 출감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신지 : 서울 후암동
활동지 : 서울
공은 1922년 11월 중순 경 재등실(齋藤實) 조선 총독 암살과 일제 관공서 파괴를 목적으로 서울에 온 처남 김상옥(金相玉)을 삼판통(三板通 : 후암동) 자신의 집에 유숙하게 하며 신변보호 및 정보제공 등을 하였다.
1923년 1월 12일 김상옥(金相玉)이 종로경찰서를 폭파한 후 공의 집에 피신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왜경 10여명이 집을 포위하였다. 이때 김상옥이 뛰쳐나가며 총격전을 벌이는 사이 공은 왜경 5~6명과 격투를 벌이며 처남(김상옥)의 탈출을 성공시켰으나 자신은 중상을 입었다.
그 후 1923년 1월 23일 김상옥이 서울 효재동에서 왜경의 총탄에 맞아 순국한 뒤 계속되는 관련자 검거에서 공은 김우진등 12명과 함께 피체(체포)되어 갖은 악형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증거불충분으로 3월16일 출감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