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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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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수(髙德秀) 조선초기 문신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9:12
조회
528
자는 군명(君明), 호는 퇴암(退庵). 할아버지는 중랑장 고천련(髙天連), 아버지는 고유렴(髙有廉)이다. 부인은 순천박씨로 박장생의 손녀이다. 동생으로 고덕칭(髙德稱), 고덕부(髙德符)가 있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39년(세종 21) 강음현감(江陰縣監)에 제수되고, 1450년(세종 32) 사헌부헌납, 1452년(문종 2)에 연풍현감을 지냈다. 임기를 마치고 음성 마피골로 돌아와 방운정(訪雲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1456년(세조 2) 병자사화가 일어나자 박팽년과 재종매부(再從妹夫)란 관계로 여주에 보내졌고, 아우 고덕칭·고덕부도 함께 유배되었다. 1472년(성종 3) 5월 24일 한양 주변 이외의 곳에서는 골라 살 수 있게 되어 처가가 있는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옛 집으로 돌아왔다. 단종이 죽자 음식을 끊고 자결하였다.

▒상세설명
*병자사화(丙子士禍) : 조선(朝鮮) 세조(世祖) 원(1455)년에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等)이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실패(失敗)하여 일어난 사화(士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