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응화(髙應華) 주서(注書)를 지냄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3:27
조회
43238
(1733∼1778년)
자는 내담(乃膽)이고 호는 직제(直齊)이다.
통덕랑 윤명(允明)의 아들로 정조 원년 정유(1777년)에 별시양과(別試兩科) 17인에 등제하여 벼슬은 주서(注書)를 지냈으며 환향하여 46세를 1기로 경륜과 포부를 펴지 못하고 세상을 마치니 아는 자 어느 누가 애석치 않으랴. 후손은 홍천에 화수향(花樹鄕)을 이루고 있다.
자는 내담(乃膽)이고 호는 직제(直齊)이다.
통덕랑 윤명(允明)의 아들로 정조 원년 정유(1777년)에 별시양과(別試兩科) 17인에 등제하여 벼슬은 주서(注書)를 지냈으며 환향하여 46세를 1기로 경륜과 포부를 펴지 못하고 세상을 마치니 아는 자 어느 누가 애석치 않으랴. 후손은 홍천에 화수향(花樹鄕)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