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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삼(髙殷三)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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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고종 29)∼1947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출신지는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온평리(溫平里)이다.

조부는 정의현감(旌義縣監)과 고창현감(高敞縣監)을 지낸 고계정(髙啓正)이다. 서울에서 학자로 있다가 6·25동란 때 납북된 고권삼(髙權三)이 동생이다.

고은삼은 어렸을 때부터 왜선이 자주 제주도를 수탈해가는 것에 분개하고 있었다. 1921년 성산포(城山浦)를 중심으로 영주소비조합을 창설하여 민족자본의 토대를 세우고 동포의 권익을 보호하려고 하였지만 3년 만에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1922년 2월 정의교육기성회를 설립하여 성산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1925년 성산면 청년회 대표로 제주청년연합회에 가입하여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청년회가 주관한 제주 성산면 체육대회에서 씨름 대회가 열렸는데 때마침 입항한 일본인 선원 및 이들에게 고용된 타지 사람 등 200여 명이 구경하다가 일본인 선원이 대전을 청하여 수락하였다.

대전 결과 일본인 선원은 패하였으며, 재대전을 요구하자 '규칙상 불가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이에 일본인 선원이 심판원 박규언(朴奎彦)의 뺨을 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인 청년과 일본인 선원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고, 평소 일본인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감정이 폭발하여 집단싸움으로 번졌다.

일제 당국은 이것을 기회로 항일적인 청년들을 체포하였으며, 당시 정의면 청년회장을 맡고 있던 고은삼도 이에 포함되었다.

그는 1927년 광주지방법원에 회부되어 징역 3년이 선고되었으며, 공소 결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가 되어 풀려났다.

1945년 8월 해방 후에 초대 성산면장(聖山面長)이 되었고, 1947년 7월 독립촉성회총성화국민회 제주도지부 부위원장에 선출되었으나, 그 해에 순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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