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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응만(髙應萬) 일제강점기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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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고종 15)∼1937년. 일제강점기 의병. 자는 주빈(周彬), 호는 강헌(剛軒)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이요, 1878년(고종 15) 전라남도 신안군(新安郡) 도초면(都草面) 외남리(外南里) 세칭 빛터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섬에 생활필수품을 파는 상인이다.
아버지를 도와 장사를 하다가, 1907년(융희 1) 고창(高敞)의 의병 모집에 지원하여 장성(長城)에 본부를 둔 의병 기삼연(奇參衍: 1851∼1908)대장 휘하에 들어갔다.

그해 10월 21일 왜병이 고창(高敞)에 들어오자 은신했던 의병들과 협공하여 왜병을 거의 전멸시켰다. 이를 시작으로 장성 분파소, 광주(光州), 영광(靈光), 법성포(法聖浦), 담양(潭陽) 등 왜병의 본거지를 습격해 사살하고 창고에 쌓아둔 양곡을 꺼내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908년(융희 2)에는 김준(金準) 부대장 지휘로 함평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 수 명을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했으며, 담양 무등산(無等山) 무등촌 전투에서는 왜병 부대장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김준 부대장이 전사한 후 이기손(李起巽) 부대에 들어갔으나, 왜병 대부대들의 호남 의병 토벌이 시작되자 병력이 약세로 대접전을 벌이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결사대로 지원, 지도읍(智島邑)과 칠발도(七發島) 등 해안지대의 왜병을 급습, 섬멸했다.

1910년(융희 4) 유격전 때에 등에 총상을 입고 흑산도(黑山島)로 피신하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치료하면서 동지들의 유격전을 은밀히 지도하였으나, 상처가 악화되어 1937년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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