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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태익(髙台翼) 조선 전기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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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 문신. 자는 문좌(文佐)이고,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증조부는 고신걸(髙臣傑)이고, 조부는 고봉지(髙鳳智)이다.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영곡(靈谷) 고득종(髙得宗)의 4남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은 고태필(髙台弼)·고태정(髙台鼎)·고태보(髙台輔)이다. 장인은 사직(司直)인 송소(宋紹)이다.

1454년(단종 2) 갑술(甲戌) 식년시(式年試) 정과(丁科) 21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다.

1455년(세조 1) 12월 27일에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로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으로 녹훈(錄勳)되었다. 이후 1459년(세조 5)에 부교리(副校理), 1462년(세조 8)에 병조좌랑(兵曹佐郞)에 올랐다.

같은 해 7월 세조가 야외에서 사냥을 구경하였는데 그는 따라 들어가 사냥하지 않았다. 이에 세조는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을 시켜 고태익의 갓[笠]을 벗겼으나, 그는 종자(從者)의 갓[笠]을 쓰고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왕명 불복종의 죄목으로 의금부(義禁府)에 체포된 후 국문(鞫問)당하였으며, 같은 해 8월 장(杖) 1백 대 및 강진현(康津縣) 귀양살이에 처해졌다. 사헌부에서 그를 율대로 다스리도록 다시 한 번 청하였으나 세조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1464년(세조 10) 7월 세조는 예악(禮樂)의 공용(功用)에 대하여 여러 문신과 유생에게 대책(對策)을 올리게 하고 이를 고과(考課)한 다음 합격한 이들에게 자급(資級)을 올려 주거나 회시(會試)에 응시하게 하였는데, 그는 3등에 올랐다.

이후 제주 사람들을 특별히 대우하려는 세조의 뜻에 따라 다시 관직에 등용되었으며 1469년(예종 1)에 형조좌랑(刑曺佐郞), 1479년(성종 10)에 부평부사(富平府使)를 역임하였다.

아들 고세창(髙世昌)·고영명(髙永命)·고세영(髙世英)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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