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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덕(髙光德)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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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고종 11) 3월 4일∼1945년 10월 17일.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고광수(髙光秀)이다. 본적은 전라북도 남원(南原)이다.

제봉(霽峰) 고경명(髙敬命)의 후손이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군자금을 출자하고 유생 70여 명을 규합하였다.

1907년(융희 1) 1월 24일 고광채(髙光彩)·고광훈(髙光薰)·인봉(麟峰) 고제량(髙濟亮)·박기덕(朴基德)·윤영기(尹永淇) 등과 함께 녹천(鹿泉) 고광순(髙光洵) 의진(義陣)에 가담하여 참모진으로 활약하였다. 같은 해 2월 남원에서 궐기한 양한규(梁漢奎)의 원군 요청을 받고, 남원성으로 진격하여 포위전을 벌였으나 실패하고 퇴각하였다. 같은 해 4월 능주(綾州: 현 화순군(和順郡))를 점령하기도 하였으나 관군과의 교전에서 패배하여 의진이 해산되었다.

그 후 고광순을 필두로 하여 다시 의병들을 규합하고 훈련 및 무기 제조를 통해 거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였다. 일이 발각되어 일본에 의해 강제로 군대 해산이 강행되자, 1907년(융희 1) 10월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연곡사(鷰谷寺)에 본영을 설치하여 궐기하였다. 그러나 일본 수비대의 야간습격을 받아 고광순·고제량 등 주요 인사들이 전사하였다. 이후 고광덕(髙光德)의 의병 부대는 이석용(李錫庸) 부대에 합류하여 일본 수비대와 교전을 벌였다.

1990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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