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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만(髙斗萬) 항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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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고종 18)∼1967년.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인·항일운동가. 제주도 안덕면(安德面) 상창리(上倉里) 497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혔다. 한때 민족종교인 보천교(普天敎)에 입교하였었으며, 1936년에는 무극대도교(無極大道敎)의 신도로서 포교 활동에 전념하였다.

1936년 1월부터 1937년 12월까지 무극대도교를 창시한 강승하(姜承河: 일명 姜昇泰)는 ‘일본은 곧 패망할 것이며 조선은 독립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퍼뜨리며 신도 900여 명을 모았다.

1937년 말에 무극대도교사건이 일어났는데, 일본 경찰이 항일세력들을 뿌리 뽑는다며 포교하고 다닌 핵심 인물 강석구(姜錫龜) ・광금문일(光金文一) ・고무생(髙戊生) ・궁본성예(宮本聖裔) ・금곡태휴(金谷泰休) ・김창규(金昌圭) ・김창호(金昌豪) ・문두철(文斗哲) ・산본인옥(山本仁玉) ・양천기현(梁川琪鉉) ・양촌창언(梁村昌彦) ・연산시화(延山始化) ・오가병표(吳家秉杓) ・오승언(吳承彦) ・오정숙(吳禎淑) ・이원두표(李原斗杓) ・장원국(張元國) ・제본종욱(齊本宗旭) 등과 함께 일본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품고 있던 고두만(髙斗萬)을 검거한 사건이다.

당시 나이 59세로 일본 천황에 대한 불경죄와 불온언동으로 치안을 해쳤다는 죄목으로 광주지방법원에서 1940년 12월 4일 날짜로 징역 10월이 선고되어 수감생활을 하였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국가기록원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관리번호: CJA0002016 문서번호: 775367 성명: 강본승하외 19인 쪽번호: 204∼257〉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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